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군사보호시설 내 통제구역에 있는 계룡산 신도안 대궐평의 주초석은 과연 풍수지리상 명당 즉 혈처에 있는가? 찾아가 확인해 본다[지리오결 이기론으로 본 명당 34] 고산봉 채널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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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신도안#풍수지리 #계룡산의 풍수지리 계룡산과 신도안은 이성계의 천도계획부터 시작되어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도참서에 이상향의 땅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 풍수지리의 길지이며, 십승지로 알려진 계룡산 일대에는 신흥종교나 무속인들이 많이 있었다. #신도안(新都內) 천황봉 아래 신도안은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풍수지리가 좋은 이곳으로 천도하려고 했던 곳이다. 1393년 2월에 공사를 시작했다가 하륜의 건의에 따라 그해 12월에 공사를 그만 두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육·해·공 3군 본부의 통합 기지가 되었다. 그래서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1392년 7월 계룡산 국도풍수도참을 고려하여 계룡산 천도 결정 1393년 2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답사 후 공사 시작 1393년 12월 하륜의 반대 상소로 공사 중단(천도 무산). 지명에도 대궐평, 종로터 등이 있고, 그곳에는 주초석등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번에는 대궐평에 있는 주초석을 중심으로 답사를 하게 된다. 신도안이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불렸는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태조가 즉위하여 계룡산 남쪽으로 도성을 옮기기 위해 기초공사까지 하다가 물길이 멀어 중지하게 되었고, 이후에 이곳을 신도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초석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일대로 도성 이전을 결정하고, 도성 공사에 사용할 석재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석재들은 부남리와 석계리, 정장리 일대에서 모아온 것으로, 크기는 대략 직경 1.2m×1.8m이며 궁궐 건축용 주춧돌로 판단된다. #원불교와 불종불박(佛宗佛朴) 불종불박 바위는 태조 이성계가 처음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고 3일 동안이나 역사할 때 갖다 놓은 돌인데, 무학대사의 필적으로 불종불박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이 뜻은 불법이 주교가 되고 그때의 부처님은 박씨임을 예시한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불박(佛朴)은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朴重彬:1891. 5. 5.~1943. 6. 1.) 대종사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1936년 4월 신도안을 둘러본 후, 이곳에 수양 도량을 짓도록 하였다. 그 후 1958년 4월에는 불종불박 석이 있는 부근 토지를 매입하여 처음에는 보은전을 짓고, 후에 삼동원으로 확장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이 군사지역이 되어 출입이 제한되자 익산에 있는 원불교 중앙총부에 원형을 복원하여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