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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사들의 태국선교 발자취 김정웅 선교사 발표자료 태국선교 50주년을 기념으로 발표하신 한인 선교사들의 태국선교에 대한 자료를 영상화 한 것입니다.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라고 생각됩니다. 국민일보 기사 참조 올해로 파송 33년째 활동 중인 김정웅(65·촌부리선교센터 대표) 이순교(64) 선교사는 여전히 현장에 있었다. 전화도 잘 연결되지 않았다. 1976년 9월10일, 한국 선교사로는 태국에 세 번째로 파송된 이들은 지난주 내내 태국 동북부 라오스 국경에 위치한 농카이에서 한국 목회자 초청 순회 집회를 돕고 있었다. 26일 가까스로 전화가 연결됐다. 방콕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촌부리. 공업단지인 촌부리도(都) 농야이군에 위치한 이곳에서 사역 중인 김 선교사는 현역 선교사로는 최고참이다. 촌부리선교센터를 중심으로 촌부리팔복교회, 은혜의 집(고아원), 평화의 집(마약재활원) 등을 통해 사역하고 있으며 선한목자훈련원과 촌부리신학대(GTS)를 통해 현지인 사역자 양육과 미얀마 국경 카렌족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30년 사역의 소감을 물었다. 김 선교사는 "선교사 경력이 길다는 것은 혹시 존경을 강요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할 제목이 많은 것, 부끄러운 실수와 시행착오가 많다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나이가 드는 것을 도리어 허물이 쌓이는 것으로 인식하는 김 선교사의 이런 모습은 바로 지난해 별세한 그의 선친의 삶과 닮아 있다. 선친 김일남 목사는 전남 함평 엄다교회를 개척해 목포제일교회에서 시무하다 원로목사로 은퇴했다. 79년 제64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장을 지냈고 농촌 목회 속에서도 칼뱅주의적 개혁신학 노선을 고집했다. 매 주일 밤과 목요일 저녁 성경공부 교실을 열었고 그렇게 해서 12명의 목사들을 길러냈다. 김 선교사는 선친을 기억하며 "재산은 없었으나 보이지 않는 유산을 많이 남기셨다"며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살라는 말씀을 항상 강조했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했던 목회자였다"고 기억했다. 복음에 대한 열정도 강해 별세 직전까지 믿지 않는 남편을 전도해 달라는 성도의 요청을 듣고 10일간 아침을 금식하며 전도하기도 했다. 또 전남지사를 전도하기 위해 세 번이나 택시를 타고 찾아가기도 했다. 선친의 삶은 선교사의 길을 택한 김 선교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76년 7월, 선교사가 되기 위해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훈련을 받던 시절이었다. 파송을 받아야 했으나 후원 교회를 만나지 못했다. 당시 선교사 기본 생활비가 300달러였는데 이를 모금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부친이 주님의 교회를 잠시 맡은 것처럼, 김 선교사도 주님의 선교에 잠시 참여한 것이라 여겼다. 하나님이 선교 사역을 이끌어주실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마침 개척한 지 1년밖에 안된 남서울교회(당시 홍정길 목사)를 방문해 선교 보고를 해 1년간 월 15만원씩 지원을 받기로 했다. 당시 환율은 1달러에 483원. 이렇게 기본 생활비 300달러가 마련돼 선교지에 부임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홍정길 목사의 당시 월 사례비가 7만원이었고 그중에서도 1만원이 김 선교사의 선교비로 드려졌다고 한다. 김 선교사는 "선교는 선교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려는 후원자 덕에 오늘까지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가 받은 신앙 유산은 김 선교사의 아들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첫째 아들인 김바울(41) 선교사는 그의 뒤를 이어 선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김바울 선교사는 "아버지는 항상 신실함을 강조하셨다"며 "옳은 것을 해야 하며 그것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른바 'MK'(선교사 자녀)로 자란 그는 부친의 삶을 보면서 자신도 선교사가 되는 것을 소명처럼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어요. 대학생 때 그 꿈이 더 구체화됐고 결국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가 됐습니다." 부친을 도와 GTS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그는 태국 현지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태국의 전문가 그룹들과 교제하며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고 방콕 뉴송교회의 부교역자로 일하면서 태국 복음화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둘째 아들인 김다니엘(39) 목사도 집안의 대를 이어 신학교 교수로 사역 중이다. 현재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미국장로교(PCA) 교단신학교인 커버넌트신학대(브라이언 채플 총장)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출처] - 국민일보 김정웅 선교사는 총회산하 남 서울교회 파송 선교사로 역시 K.I.M.를 통하여 태국에 도착하여 안식년을 맞은 신홍식 선교사의 후임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6년 9월 초순이었다. 김정웅 선교사 역시 C.C.T.총회에서 한국선교사가 하던 사역을 계승받아 제6노회 한인교회 사역과 제8노회 교회순회 전도사역에 열중하였고 후에 미얀마 국경지대에 있는 카렌족에게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후원하는 한편 윤수길 선교사사 가정을 초청하여(1980.10.14) 사역을 준비케 하였다. 논문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