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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십자가 명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지내기 하루살이만 있는 세계에서 하루살이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오직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만 되었다면 노란색이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오직 이 세상에 남자만 있다면 남자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인생이 덧없다는 것만 있다면 덧없다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덧없다, 라는 말은 한다는 것은 이미 덧없지 않는 삶이 있다는 말이 된다. 남자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이미 여자가 있다는 말이 되고, 노란색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다른 색도 있다는 말도 된다. 하루살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이미 하루살이가 아닌 삶도 있다는 말이 된다. 누구나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인생이 참으로 덧없구나! 하는 생각을 한두 번씩 떠 올린다. 절망에서 허망과 허탈까지 오고 겹치면 일분일초가 괴롭다. 마지막까지 가 보아서 그런지 덧없는 삶에는 더 이상 기웃거리기 않게 되었다. 내가 덧없는 삶을 말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속으로는 덧있는 삶도 있다는 것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었던 것 같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 창세기 2-7 “하야 레네페쉬” 라고 되어있는 부위를 영어성경에도 여러가지로 되어 있었다. a living soul, a living sprit, a living person, a living creature, a living being. 한글 번역도 그랬다, 산 혼, 생령, 등……. 이중에서 나는 a living being을 택했다. 이유는 being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덧없지 않는 삶을 찾아야 했다. 절망가운데 인생의 허망과 허탈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다행히 우린 덧없는 삶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덧있는 삶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덧있는 삶이 바로 a living being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being이라는 말을 “ 있음” 이라고 직역했다. 존재라고 번역을 주로 하는데 존재라고 하면 보이는 것을 주로 말하는 것 같아 대신 있음이라는 말을 써 보았다. 그냥 “있음” 만으로 되는 세계가 있음을 곧 알아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있음”이라는 말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나에게 남은 것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내 놓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있음”만 있어도 되는 그런 곳에 가곤 했는데 숨이 쉬어지고 쉼이 생긴 것 같았다. 자주 들렸다. being이라는 말은 너무 날 편하게 했다. i am 이나 i am that i am 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나 있음” 만 있어도 되는 세계이었다. 덧붙임이 없고 단지 “있음” 만 있어도 되는 세계는 나를 너무나 가볍게 해주고 있었다. being 앞에 living 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 좀 부담이 되었다. 그냥 being이면 되는데 무엇이라도 붙어 있는 것은 being을 변질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있음이라는 말을 쓰는데 어느 대목에서 내가 살아 있음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있음이라는 말보다 살아 있음이라는 말이 더 싱싱하고 넘치는 생명이 흐르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living being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살아 있음” 이 살아 있음이라고 하는 a living being 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근원이고 본질이고 바탕이 되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a 라는 말이 붙어 오직 하나인 전체성 의미를 뜻하기도 했다. 보이든 안 보이든 모든 것들은 근원이고 본질에는 다 하나로 서로 연결이 되고 있었다. 우주지성과 그물망으로 연결이 된 하나로 보인 것이다. 보이는 형상과 모양으로 몸과 마음이 있는 차원을 넘어 보이지 않지만 순수 있음으로 근원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의식이었다. 이것은 바로 의식을 말하는 차원이었다. 몸과 마음은 1차 창조로 의식은 2차 창조를 나누어 보면 모든 것이 잘 설명되었다. 그런데 마음도 보이지 않은 것이지만 이것도 심리적으로 형상화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과 의식을 어떻게 구별이 되는지 이것이 매우 중요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중 가장 중요하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생각이다. 생각은 의식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 없이도 의식하는 것은 가능했다. 마음속의 생각은 기능이고 도구다, 성경적으로 보면 흙으로 사람이 만들어지면서 마음도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은 마음이 어디에서 근원을 두고 만들어진 출처는 말하고 있지 않다. 여러 재료를 하드웨어로 사용하여 자동차를 만들어서 기름을 넣으니 움직임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생긴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다. 이 자동차에 운전사가 탑승하는 것을 바로 의식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마음속 생각을 기능으로 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마음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의 생각과 동일시된 자아를 에고라고 말하면서도 에고가 아닌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 살아가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발한 수행을 통해야만 가능한 것처럼 되어있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돌리는 것을 깨운다고 한다. 나는 의식을 깨운다는 것을 마음 속 생각을 어둡게 하는 것으로 택해 보았다. 생각에 의해 의식은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에 의식이 전면에 나타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 것이다 명상(瞑想) 이라는 기법을 활용했다. 명상에서의 명자는 어두울 명(冥) 또는 눈감을 명(瞑)자로 되어있다. 눈감을 명(瞑)자를 사용한 명상(瞑想)은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하는 것으로 보고 어두울 명(冥)자를 사용한 명상(冥想)은 어두운 곳에서 고요히 생각을 깊게 하는 것으로 해석해서 공히 생각을 깊게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명상이라고 하여 생각에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것도 한 가지 생각으로 집중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예 생각을 어둡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어두울 명 생각 상 즉 생각을 어둡게 하는 것으로 해석을 한 것이다. 생각을 어둡게 하면 즉 생각이 치워진 바로 그 자리에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은 바로 의식으로 되어 있다. 의식이 전면에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마음속 생각과 동일시 된 것을 벗어나 의식은 저절로 들어나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식을 깨운다는 말이 된다. 의식을 깨우는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지만, 가장 쉽고 즉시 효과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방법으로 십자가 죽음을 함께하는 십자가 명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나는 주로 십자가 명상을 한다. 2024 0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