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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경종 #선의왕후_어씨 #어유구 #노론 #소론 #어조당 #저승전 #의릉 오늘 왕비로 배우는 한국사 조선왕비실록은 경종(景宗) 이윤(李昀)의 계비로 영조의 원수이자 정적이었던 왕비,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이야기입니다. 선의왕후는 영돈녕부사 어유구(魚有龜)의 딸로서 어유구는 노론 영수 김창집의 제자이며 일가가 모두 노론계로 노론계열의 명유이자 호락논쟁에서 낙론을 이끌었던 어유봉이 어유구의 형입니다. 즉, 소론계 배후인 경종과 반대 집안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은 것인데 아이러니하게 선의왕후는 소론으로 전향해 영조의 원수이자 정적이 되었지만 어유구는 딸과 반대로 노론으로서 영조를 옹호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선의왕후가 왕대비가 된 이후에도 영조는 형식상 외척이나 다름없는 어유구에게 따로 벼슬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1718년 만 12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간택되어 같은 해에 왕세자와 어의궁에서 친영례를 치르고, 경희궁 광명전에서 동뢰를 치렀으며 다음 해인 1719년 9월에 관례를 올렸습니다. 본래는 어떻게든 당시 30이 넘었던 경종과의 나이차를 최대한 좁히기 위해 18세~22세까지의 처녀를 간택하려고 했지만 당시의 조혼 풍습으로 간택단자가 매우 적어져 바꾸었다고 합니다. 1720년 숙종이 사망하고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는데 경종의 정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왕비 추봉과 선의왕후의 왕비 책봉을 동시에 주청한 것이 청나라에 트집잡혀 1721년에야 고명을 받았습니다. 경종 1년, 경종에게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이이명 등 노론 4대신과 혜순왕대비 김씨(인원왕후)의 강력한 추진으로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이 결정되었을 때, 선의왕후의 나이는 갓 17세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경종의 나이가 34세로 몸이 약하지만 나이가 창창한 왕에게 후사를 보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라는 것은 앞으로 후사를 볼 수가 없다고 전제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세제 책봉을 청에 알리러 갔을 때 청에서도 왕이 아직 젊은데 왜 벌써 동생을 세제로 책봉하냐며 의아해 했는데 조선 사신 이건명이 왕이 발기불능이라는 등 인격모욕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선의왕후 어씨는 연잉군을 반대하여 종실과 비밀리에 연합해 소현세자의 직손인 밀풍군 탄, 혹은 밀풍군의 아들인 관석을 입양하려 하였으나 경종의 급서로 실패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