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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에서 설명하고 있는 무과전시의(武科殿試儀) 장소는 모화관(慕華館)입니다. 국왕은 먼저 근정전에서 문과전시의(文科殿試儀)를 시행하여 진시(辰時)에 문과의 시험문제를 출제한 후 문과 시관들에게 감독을 맡기고, 모화관으로 행차했습니다. 왕이 익선관에 곤룡포를 갖추고 여를 타고 나온 다음 근정전 문밖에 이르러 연을 갈아타고 모화관에 설치된 단소(壇所)로 가서 단에 오릅니다. 이후 병조와 훈련원 관원 및 거인은 들어와서 단 아래로 나아가 사배를 올립니다. 거인은 모두 활과 세 개의 살을 가지고 2인 1조로 구성됩니다. 훈련원이 북을 세 번 울리면 거인이 들어와 장사위(將射位)로 나아가 멀리 있는 과녁인 원후(遠侯), 중간 거리에 있는 과녁인 중후(中侯),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과녁인 근후(近侯)에 활쏘기를 합니다. 활쏘기를 모두 마치면 기사(騎射)를 하게 되고 기사 후에는 기창(騎槍) 그 다음에는 격구(擊毬)를 하고 모두 물러납니다. 마지막으로 병조는 등제(等第)를 가려 왕에게 알리고 거가(車駕)는 궁으로 돌아갑니다. 조선 전기 무과의 시관은 2품 이상의 참시관 3명, 3품 이하 6품 이상인 참고인 5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시험을 주관하고 책임을 맡은 관원들이었습니다. 또한 무과에는 이들보다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차비관(差備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험장의 실무 관리자들로 시험감독과 성적 채점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들은 세세한 곳까지 신경 써서 업무를 나누고 각 시험 과목별로 구분되어 배치되었습니다. 차비관을 돕는 잡인들도 있었는데 차비관의 명령에 따라 깃발을 올리고 징이나 북을 울리며, 말을 끌고 관리하였습니다. 신분은 대체로 하급 군인이나 차비노 등으로 색인(色人), 공인(鞚人), 잡인(雜人)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시관이 시험을 총감독하고, 차비관이 각 실무를 담당하여 감독하며, 잡인들이 그들의 명령에 따라 역할을 하는 구성으로 무과 과거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자료 사진·영상 출처 | 韓國의 場·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청 #알쓸신잡 #조선시대 #공시 #과거제도 #과거 #시험 #무예 #무과 #국조오례의 #문과전시의 #무과전시의 #모화관 #초엄 #이엄 #삼엄 #왕 #단소 #사배 #거인 #원후 #중후 #근후 #보사 #기사 #기창 #격구 #속대전 #시관 #참시관 #참고인 #차비관 #잡인 #군인 #차비노 #색인 #공인 #잡인 00:00 오프닝 00:42 무과전시의 장소 01:04 초엄 01:20 이엄 01:35 삼엄 02:13 시취 과정 03:44 Q. 무예를 1개 내지는 2개만 시취하는데 기사·기창·격구도 하나요? 04:40 무과 시관 05:14 차비관 종류 06:37 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