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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본에서 태어나 고향 청송으로 귀환한 구술자는 초등학교 때 부산으로 이주하여 동구 일대에서 성장하였다. 1971년 2월 국제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문화부와 사회부 소속으로 있으면서 중금속 오염 등 여러 번 특종으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하였다. 1976년 포항 석유 발견 관련 박정희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논문을 작성·배포하였다가 국제신문에서 한때 해직당하기도 하였다. 국제신문 기자협회 간사로 유신 시절 언론자유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그는 1979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을 겪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현장에서 시위대의 폭발적 에너지를 목격한 데 이어, 10·26사건으로 18년의 독재정권이 붕괴되자, 이에 결정적 기여를 한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닫고, 그 기록을 남기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1980년 5월 18일 전까지 7개월간 항쟁 참가자와 진압 군경 등 관련자를 취재하였고, 광주에 5·18 취재를 다녀왔다가 해고된 후 본격적 집필에 들어갔다. 1981년 가을 월간마당 편집장이 되어 서울로 올라가고 나서는 부마항쟁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과 대응을 취재하여 보완하였다. 그 결과 1987년 6월 29일 부마민주항쟁 현장취재기 "유고"가 빛을 보게 되었다. 1980년대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있으면서도 5·17, 5·18, 12·12 최초 보도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이 과정을 통해 구술자는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하였다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 출발점인 부마민주항쟁이 5·18보다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부마민주항쟁은 3·15 이후 6월항쟁까지 이어지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연결지점이자 핵심이며, 부산이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한 만큼 지역민들이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알리고 연구하는 작업이 앞으로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