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진 제주 광치기 해변 백패킹 скачать в хорошем качестве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진 제주 광치기 해변 백패킹

비행기를 타고 창밖을 보니, 마치 구름 위에 내가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순백의 구름과 파란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나는 그 풍경을 천천히, 느릿하게 눈에 담아 기억의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어느덧 비행기는 제주에 가까워졌는지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흐릿하게 보이는 한라산 위로 비가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창문에 맺힌 빗방울은 차창을 타고 흘러내리며 작은 길들을 만들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붐볐다. 짐을 찾고 차를 빌려 서둘러 성산으로 향했다. 일기예보에는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장대비가 내린다고 했기에 속도를 조금 올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제주도는 점점 병들어 가는 듯 보였다.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은 짓밟히고, 수백 년 수천 년 이어져 온 풍경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 어리석음이 사람들을 병들게 할 것이라는 걸 정작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한 시간을 달려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흐릿하게 보였다. 마트에 들러 광어회를 사고, 도착 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볶음김치김밥을 집어 들었다. 허기가 져서였는지, 아니면 원래 맛이 있어서였는지, 그 김밥은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나는 맛집을 단순히 혀에 강한 자극을 주는 음식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음식, 분위기, 주인장의 품격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맛집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광치기해안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방을 둘러멘 뒤 천천히 걸었다. 발밑의 모래는 걸음을 옮길수록 움푹 패여 들어갔고, 그 모래는 검은빛이었다. 귀에 와 닿는 건 오직 파도 소리. 수많은 소음에서 벗어난 시간, 쓸데없는 잡음이 사라진 이 순간이야말로 자유가 아닐까. 공기는 습하고 무거워, 물방울이 떠다니는 듯했다. 팔, 다리, 얼굴에 물방울이 맺히고 땀이 흘러내렸다. 저 멀리서 쿵쾅 울리는 번개 소리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급히 텐트를 치고 의자를 펼쳐 성산일출봉을 바라보았다. 파도소리와 일출봉은 윤석철 트리오의 리듬을 떠올리게 했다. 땀이 식어가는 사이, 밀려드는 파도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테이블을 펴고 회와 소맥을 곁들였다. 술을 잘 받지 못하는 몸이라 금세 열기가 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할 즈음, 저 멀리 번개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깨와 머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시원했다. 텐트 안으로 들어와 책을 펼치고 누우니, 빗소리가 천막을 적시기 시작했다. 파도소리, 빗소리, 바다 한가운데 홀로 있는 지금, 나는 ‘나’를 지우고 세상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의 입에서 불려진 이름으로 규정되는 내가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파도 소리를 집어삼켰다. 밤 아홉 시쯤 비가 그쳤다. 텐트를 열고 밖을 보니, 바다 끝에는 수많은 어선들이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이 시간에도 바다로 나오는 어부들은 얼마나 부지런한가. 굳은살 박힌 손을 가진 그들의 몸은 목욕탕에 가면 볼 수 있다. 내 고향 장유의 목욕탕 노인들이 축 늘어진 몸과 흐릿한 눈동자를 가진 것과 달리, 제주 목욕탕에서 만난 노인들은 다리에서 머리끝까지 노동으로 단련된 몸을 지녔다. 굵은 팔, 두꺼운 허벅지, 그리고 크게 웃는 얼굴. 제주 방언을 쓰며 웃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따라 웃게 된다. 노동은 인간의 가치를 높인다. 그리고 그 시작이 자연임을, 제주에서 더 깊이 느낀다. 도시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타락으로 몰아넣고, 가슴속 방향을 잃게 만든다. 잠이 쏟아져 불을 끄고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두 시쯤 잠시 뒤척이며 깼다. 꿈을 꾼 것 같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밖에 나와 쏟아지는 별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 빛의 시작은 어디일까. 그렇게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새벽 다섯 시 스무 분, 바다 위로 서서히 태양이 떠올랐다. 붉은빛으로 물드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성산일출봉은 장관이었다. 말을 타고 바다를 달리는 제주인의 모습은 또 얼마나 멋진가.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아름답다. 몇 번이나 찾은 곳이지만,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며 감정이 달라져서일 것이다. 짐을 정리해 차에 실어두고 달리기 채비를 했다. 성산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잠을 설친 탓인지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기분은 달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길을 발로 내딛는 두근거림도 있었다. 길을 잘못 들까 잠시 긴장했지만, 이 또한 달리기의 일부였다. 마을로 들어서니 제주 할망들이 일을 가려는지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기분을 좋게 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니, 제주 방언으로 무언가를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도 웃으며 지나쳤다. 아침이라 공사장 인부들도 보였고, 성산항을 지나 프랏츠 커피로 향했다. 미리 검색해둔 카페는 아침 여덟 시에 문을 열었다. 계란 샌드위치와 콜드브루 조합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9월 중순인데도 여름 같은 날씨 탓에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시계를 보니 6km 정도 가볍게 달렸다. 카페에는 이른 아침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세수를 하고 자리에 앉아 콜드브루와 계란 샌드위치를 맛보았다. 빵과 커피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고, 여름날 불어오는 산등성이의 차가운 바람 같았다. 더 먹고 싶었지만, 땀으로 지친 몸이라 얼른 정리하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옷을 훌훌 벗고 차가운 물에 5분가량 샤워를 했다. 그리고 탕에 몸을 담그니 시간이 아홉 시를 향해 있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욕탕 구석에 누워 잠을 청했다. 누군가 본다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수건이라도 걸칠걸 후회했지만 이미 잠이 나를 덮쳤다. 행복이란, 별것 있는가. #camping #백패킹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