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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성추입니다. 오늘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인 ‘미키 리’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국내 최대 재벌 총수의 장손녀로 태어나 온갖 풍상을 겪으며 엔터 사업계의 막강한 실력자로 성공한 그녀의 스토리는 재벌가 딸들의 로망이나 다름 없습니다. 누구보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DNA를 가장 많이 물려 받았다고 자부하는 이미경 부회장은 현재도 세계 엔터 사업계의 막후 실력자로 인정 받고 있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런 한편에선 ‘파티광’이라는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미경 부회장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망해 봅니다. 이미경 부회장은 1958년 4월 미국 미시건주에서 유학하던 삼성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회장과 손복남 여사와의 사이에 장녀로 태어납니다.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자가 됐으며 현재도 미국 국적으로 있고 실제 거주도 미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미키 리 라는 미국 이름이 자연스러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태어나기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학업은 한국에서 이어졌습니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다시 중국 푸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이러한 경력으로 영어와 중국어에 유창하게 됩니다.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인으로 나선 것은 1994년 삼성전자 미국법인인 삼성아메리카 이사로 나서면서였습니다.이때 이 부회장은 중앙종합금융 사장이었던 김석기씨와 막 이혼한 상태였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김석기 사장이 이 부 회장의 입주 과외 교사였다는 설과 삼성 직원일 때 정략적으로 맺어줬다는 설이 분분합니다. 김석기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하버드대학에서 유학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오래가지 않았고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었습니다. 김 사장은 그후 연극배우로 유명한 윤석화씨와 재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 사장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잘 나가는 CEO로 활동하다 IMF이후 회사가 몰락하면서 해외로 도피해 현재까지 해외에 머물고 있습니다. 1, 이혼후 엔터사업가로 변신한 이미경 부회장의 성공스토리 어쨌든 이 부 회장이 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이혼후 삼성전자로 입사하고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해 독자경영을 하면서였습니다. 삼성가의 다른 인물들을 소개할 때 자주 언급했지만 삼성 이건희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삼성그룹을 통째로 물려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몇 개 계열사를 떼어주고 독립을 하도록 합니다.이때 삼성그룹의 모태나 다름없는 제일제당을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회장 집안에 분가하게 된 것입니다.제일제당을 장남 집안에 분가 시켰지만 사실상 장남인 이맹희 회장은 경영에 참여 할 수가 없어 그의 장남인 이재현 회장이 물려 받게되고 오늘의 CJ그룹이 된 것입니다.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은 삼성전자 소속에서 자연 제일제당으로 옮겨갔습니다. 1998년 제일제당 멀티사업부 이사로 자리를 잡은 그녀는 식품기업의 대명사인 제일제당을 엔터사업 회사로 탈바꿈하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삼성전자에서 근무할때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사 드림웍스에 대한 3억달러의 투자를 주도한 사실이 도하 언론에 알려지면서 그녀의 이름도 세상 밖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드림웍스는 원래 삼성그룹의 자본투자를 원했고 이건희 회장도 호응해 성사가 이뤄졌지만 삼성과의 최종 협상은 결렬되고 맙니다. 삼성이 요구한 경영권을 스필버그 감독이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삼성과의 완전한 독립을 꿈꾸던 이재현 회장이 스필버그 감독과 의기가 투합되면서 결국 제일제당과 성사가 이뤄진 것입니다. 이때가 1995년 3월입니다. 이미경 부회장이 삼성전자 소속이지만 제일제당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이때부터 이미경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게 됐고 엔터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성으로 자리메김하게 됩니다. 이 부회장은 그 여세를 몰아 제일제당을 엔터사업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도록 만듭니다.1998년 서울 광진구 강변테크노마트에 영화관 CJCGV 1호점을 내며 멀티플렉스 영화관 시대를 엽니다.멀티플렉스의 등장은 국내 영화산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습니다.이 뿐만이 아닙니다. 현 CJENM의 전신인 C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영화배급사에에도 뛰어들었습니다.이 CJENM은 현재까지 영화제작 투자 배급 등에 약 3조원을 투자해 한국 영화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주역으로 평가받습니다.1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를 비롯 수많은 대작들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아케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직접 프로듀서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영화가 아케데미 4관왕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이미경 부회장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렇게 경영인 이미경으로서 승승장구 했지만 많은 구설수에 시달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동생인 이재현 회장이 구속됨으로써 사실상 CJ그룹을 이끌고 있던 그녀에게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았습니다.이재현 회장은 2013년 500억원대의 세금 탈루와 700억원대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전격 구속된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몇 년전인 2008년 이재현 회장의 개인자금을 관리하던 재무팀장 이모씨가 사채업자에게 170억원을 빌려줬지만 못받게 되자 조직폭력배를 시켜 사채업자를 살해하려다 적발돼 기소되면서 불거졌던 사건입니다. 2,그룹 경영 총괄하다 미국으로 가야만 했던 숨겨진 사연 박근혜 대통령 집권시절 지하경제를 양성화시키겠다고 하자 국세청에서 다시 고발하며 수면위로 떠 올랐고 결국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이를 두고 주변에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그의 형인 이맹희 회장과의 갈등이 이런 결과를 잉태하지 않았나 하는 얘기들이 돌았습니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면서 가족병력인 ‘샤리코 마리 투스’라는 유전병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손발의 근육이 굳어지는 이 병은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쪽에서 유전돼 현재 3세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이재현 회장은 물론 그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건희 회장에 이어 그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앓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자 이미경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경영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전면 부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박근혜 정부가 이미경 부회장의 전면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룹내 구설수가 잇따랐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CJ그룹과 이미경 부회장이 엔터사업을 통해 보수정부를 비난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는 이유로 그룹과 이 부회장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실제로 케이블채널인 tvN을 통해 정치 풍자극인 ‘여의도 텔레토비’를 선보였는가하면 ‘광해’ ‘변호인’ 등을 제작 배급하면서 보수정치인을 자극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3, 재벌가 딸들의 로망인 이미경 부회장의 다음 행보는? 박근혜 정부는 CJ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는가하면 조원동 경제수석을 통해 ‘손경식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이미경 부회장은 CJ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면 좋겠다’는 취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부분은 박근혜 정부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조원동 수석과 손경식 회장과의 주장이 조금씩 갈리기는 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CJ그룹과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한 일간지에 박근혜 회고록이 연재되고 있어 확실한 얘기가 나올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룹내에서의 불화도 불거집니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뒤 이 부회장은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을 비롯 전문경영인들과 경영위원회를 구성해 사실상 그룹 경영을 총괄했습니다. 외부에서 자기 사람을 대거 영입하고 조직개편을 실시하면서 구속된 이재현 회장을 자극했음은 물론 조직내 파열음도 들리기 시작했습니다.특히 고문으로 영입한 한 인사가 기존 CJ임원들과 갈등을 벌이면서 조직내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유명 연예인과 유력 인사들을 대거 초지해 자주 파티를 연 것도 내부에서 잡음이 일었습니다. 이 부회장의 파티에는 국내 톱 가수와 배우들이 대거 참석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이미경 부회장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권과의 소원한 관계와 그룹내 잡음이 그늘 놔두지 않았습니다.2014년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손경식 회장은 당시 이 부회장의 출국은 유전병이 악화돼 치료받기 위함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회사 내에서 여러사람들과 약간의 문제가 있어 미국에서 엔터 관련 일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였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후 그녀는 CJ그룹 부회장이라는 직책만 있을 뿐 그룹내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2019년 영화 기생충을 통해 화려하게 메스컴에 등장해 역시 엔터 사업에는 이미경 부회장이 최고다라는 찬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 엔터 사업을 세계화로 이끌고 세계적인 막후 실력자로 알려진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삶을 짚어봤습니다.국내 최대 재벌의 장손녀로 태어나 엔터 사업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녀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나 다름없습니다. 지금도 엔터 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미경 부회장의 또 다른 그림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경 #이재현 #이병철 #C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