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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 1호 덧널무덤: 1,600년 만에 드러난 신라의 잊힌 장군

경주 황남동 1호 덧널무덤: 1,600년 만에 드러난 신라의 잊힌 장군 경북 경주 황남동의 고즈넉한 언덕 아래,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한 구의 무덤이 최근 세상의 빛을 보았다. 바로 '황남동 1호 덧널무덤', 아니 더 정확히는 '황남동 1호 목곽묘'라 불리는 이 유적은 신라 왕경의 심장부에서 발굴된, 약 1,600년 전의 귀족 장수의 안식처다. 2025년 10월 20일, 국가유산청과 경주시 산하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공개된 이 무덤은 단순한 고분이 아니다. 그것은 신라의 장례 문화가 급변하던 과도기의 증언자이자, 고대 군사 문명의 생생한 기록이다. 황남동 120호분이라는 거대한 적석목곽분(돌무지 덧널무덤) 아래서 우연히 발견된 이 작은 목곽묘는, 마치 시간의 층을 뚫고 올라온 유령처럼 우리를 놀라게 했다. 발굴 과정은 2018년부터 시작된 황남동 120호분 조사에서 비롯되었는데, 연구원들은 그 아래에 숨겨진 여섯 기의 목곽묘 중 하나를 이 '1호'로 명명했다. 이 무덤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직접적인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물들은 그의 위상을 명확히 드러낸다. 무덤 주인은 팔을 벌린 채 다리를 O자 모양으로 구부린 자세로 누워 있었고, 그의 곁에는 순장자(隨葬者)로 보이는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 순장자들은 주인을 따라 죽어 묻힌 노예나 시종들로 추정되며, 그들의 뼈는 팔과 다리의 뼈가 불완전하게 보존된 상태였다. 무덤의 중심에는 나무로 짠 '곽' 안에 '널'이 놓여 있었는데, 이는 전형적인 덧널무덤의 구조다. 덧널무덤이란 고인의 시신을 얹는 널 주위에 나무 방(덧널)을 두르고, 그 안에 부장품을 함께 안치하는 형태로, 신라 초기(4세기 말~5세기 전반)에 흔히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무덤의 특별함은 그 '과도기적' 특징에 있다. 위쪽에 쌓인 돌무지(돌 더미)가 덧널을 보호하는 듯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목곽 중심의 덧널무덤에서 돌을 활용한 적석목곽분으로 진화하는 전환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연구원들은 이 변화를 "장제 문화의 구조적 변화"로 평가하며, 신라 사회가 점차 안정되고 복잡해지던 시기의 상징으로 본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아마도 더 튼튼한 무덤 구조를 통해 영혼의 안위를 영속화하려는 신앙적 욕구, 그리고 왕권 강화에 따른 장례 의식의 세련화가 배경에 있었을 터이다. 무덤 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단연 '금동관 조각'이다. 신라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금동관으로, 무덤 주인의 머리에 씌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금속으로 세공된 이 관은 화려한 장식과 함께 주인의 고귀한 지위를 상징하며, 신라 귀족 문화의 초기 형태를 엿보게 한다. 이 금동관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다. 그것은 신라가 중국이나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금속 공예 기술을 도입하던 시기의 증거로, 왕경의 경제적 번영을 암시한다. 게다가 이 무덤은 군사적 면모를 강하게 드러내는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출토된 갑옷과 투구 일체는 사람과 말의 철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중장기병(重裝騎兵)용 철갑은 신라의 기마 전술을 생생히 재현한다. 화살통, 칼, 창 등의 무기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말의 안장과 고삐 흔적까지 남아 있어, 주인이 전장에서 활약한 장군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군사 유물은 신라가 삼국 통일을 향해 군사력을 강화하던 초기 단계의 기술 수준을 보여주며, 고구려나 백제와의 교류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반영한다. 순장자 뼈 옆에 놓인 이 무기들은, 죽음조차 전투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게 하며, 고대 전사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그려낸다. 이 발굴의 배경은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황남동은 신라의 왕릉군(王陵群)으로 유명한 곳으로, 이미 수많은 고분이 발굴되어 신라 역사를 밝혀왔다. 그러나 120호분 아래에 또 다른 무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은 고분의 층위적 구조를 새롭게 조명한다. 연구원들은 "무덤 아래 무덤" 현상을 통해 신라의 토지 이용 패턴과 장례 공간의 연속성을 분석 중이다. 게다가 이 무덤은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둔 경주의 문화유산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되었는데, 10월 27일부터 일반에 공개되어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2025년 10월 29일) 발굴 현장은 경주시 황남동 120호분 인근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보호 천막 아래서 유물 복원을 위한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땅속에서 솟아오른 나무 곽의 잔해를 보며, 1,600년 전의 장군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황남동 1호 덧널무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신라의 사회 구조—귀족의 권력, 군사의 위용, 장례의 진화—를 한눈에 담은 캡슐이다. 이 무덤을 통해 우리는 고대 사람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어떻게 영원성을 추구했는지 되새긴다. 앞으로의 연구는 이 유물을 바탕으로 신라 초기의 정치·경제사를 재구성할 것이며, 어쩌면 잃어버린 왕의 혈통까지 밝혀낼지도 모른다. 땅속의 이 작은 방은, 오늘날 우리에게 과거의 목소리를 전하며, 역사의 물줄기가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만약 경주를 방문한다면, 이 무덤을 빼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