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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개요 • 제목 : 見, 바라보다 (비움갤러리 기획 5인전) • 작가명 : 김미정, 라인석, 박종면, 우영, 이상신 • 전시기간 : 2019년 10월 01일(화) ~ 2019년 10월 06일(일) • 관람시간 : 11:00~19:00 (일요일, 공휴일 ~16:00) 월요일은 휴관 • 오프닝 : 2019년 10월 01일(화) / 18:00 • 작가와의만남 : 2019년 10월 06일(일) / 16:00 • 장소 : 비움갤러리 / 서울 중구 퇴계로36길 35 B1 (www.beeumgallery.com) • 문의 : 070-4227-0222 ([email protected]) ■ 전시소개 見(견), 바라보다 見, 바라보다(라인석) 1. 내 작업을 바라보다 2. 내 전시를 바라보다 3. 나 자신을 바라보다 그리고 바라보기를 바라보다. 見, 바라보다(김미정) 방 한칸을 온전히 비우고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 빈 방은 '밝은 방'이라 설치한 조명을 빼고. 조금은 거칠게 iso를 올리고 느슨하게 조인 조리개는 피사체를 피해서, 늘 보아오던 앞모습이 아니라 표정을 지어낼 수 없는 뒷모습을 본다. 나의 자궁과 남편의 직장과 아이들의 학교 문이 닫히기 직전인 쉰살의 나를 '보다'. 恨을 보다(박종면) 전시상황(戰時狀況)이다. 1909년에 3.1운동이 거족적(擧族的)으로 일어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그 뒤 한 세기 즉, 100년이 지난 올해 우리 민족을 침략, 침탈, 겁탈했던 일제가 다시 선전포고를 해왔다. 주요 물품 수출 중단,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으로 경제 보복을 해왔다. 사실상 전쟁을 일으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유는 과거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을 품은 것이다. 그들은 저들이 저지른 강제징용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의 과거사가 모두 종결됐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과연 과거사가 저들 말대로 모두 해결되었을까? 피해 당사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 의견도 듣지 않고 합의? 해결? 개도 소도 웃을 일이다.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 총칼 앞에서 원치 않는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김복동 할머니는 전 세계를 다니며 피해사실을 알리고 가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끝내 저들 전쟁범죄자들에게 사과를 받지 못하고 올해 초 눈을 감았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김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 맺힌 삶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치욕스런 한일 강제병합, 가해자의 총칼에 빼앗긴 소녀의 청소년기, 여성 인격체로서의 일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이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과거 없는 현재, 현재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는 일. 소녀의 한(恨)은 민족의 한이다. 소녀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한을 풀지 못했다. 나는 한을 본다. 죄의식 없는 뻔뻔한 전범(戰犯)을 본다. 지금은 전시상황, 전시에 맞는 행동이 필요할 때다. SHOW WINDOW(쇼윈도)(우 영) 나는 쇼윈도 안의 마네킹을 바라본다. 그러다 쇼윈도 안에 있는 나를 바라본다. 마네킹인지, 나인지, 연극인지, 현실인지. 내가 바라보던 마네킹이 어느새 나를 바라본다. Stone, new Conception (돌, 새로운 구상)(이상신) 사진을 찍는 행위는 무시될 수도 있는 대상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 존재의 힘을 표현하는 일이다. 우리는 정물사진 혹은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사진, 사물에 대한 예술가의 주관과 객관의 개입, 사진의 진실과 조작 그리고 사진을 예술로 만드는 그 무언가에 대한 질문과 끊임없이 마주하게 된다.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다. 자연계의 모든 것은 고유의 기능과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의식적 시각을 통해서만 비로소 보이지 않는 존재(Invisible Beings)가 보이는 존재(visible Beings)로 인식되는 것이다. 정신의 세계를 프로이드는 밖으로 드러나는 의식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의식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시각의 세계에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각적 의식과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각적 무의식이 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시각적으로 인식한다고 여기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각은 그저 시각적 무의식일 뿐이다. 눈으로는 보이지만, 마음으로는 보지 못하는 이미지 즉,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일 뿐이다. 이번 작업의 오브제는 Stone, 돌이다. 돌은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늘 함께 해 온 도구이자 중요한 존재였다. 수렵의 도구였고, 현대 시대 건축의 중요한 자재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돌을 보고자 하지 않고 결과물만 보고자 한다. 이처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존재이지만 하나의 돌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접점이 작업의 시발점이 되었다. ‘Stone, new Conception (돌, 새로운 구상)’ 작업은 3,1운동 100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시작,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무수한 개인의 의미를 넘어 거대한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의 존엄성을 이야기한다. 구성원 하나하나를 의식하는 행위는 마음으로 인식하는 아름다운 행위라 할 수 있다. 오브제인 돌은 외면당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이지만 작업을 하는 동안 관찰과 사유를 통해 성찰의 대상으로 다가왔으며, 시각적 무의식 속에 잊혀진 것들에 대한 의식 행위였다. 이 작업이 관람자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겠으나, 함께 이 시대 모습에 대한 고민의 화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