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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대한제국군을 강제 해산시키자 의병들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일본의 적극적인 진압으로 인해 설 곳을 잃어갔다. 국내에서의 무장 항쟁이 어려워지자 의병들은 그 기반을 국외로 옮겼다. 특히 두만강과 접경지대인 러시아 연추로의 이동이 많았다. 연추에 살던 최재형은 흩어진 의병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모았다. 당시 주러시아공사 이범진이 군수금 1만 루블과 함께 아들 이위종을 보내 러시아에 있는 모든 항일 의병 세력의 결합을 주도했고 동의회가 창설됐다. 총장 최재형을 필두로 간도관리사였던 이범윤이 부총장, 헤이그 밀사였던 이위종이 회장을 맡았다. 안중근 등의 주요 회원이 발기위원으로 참석했다. 최재형은 러시아 최초의 한글신문인 『해조신문』에 동의회의 취지서를 실어 일본과의 대격전이 멀지 않았음을 공표한다. 그의 계획은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한반도로 침투하는 국내진공작전이었다. 최재형은 의병들을 100명 내외의 소규모 부대로 나눠 두만강 일대로 향하게 했다. 회령 인근 전투에서 일본군은 100명에 이르는 사상을 입은데 반해 의병들의 피해는 부상 4명에 그쳤다. 항일의병의 놀라운 변화의 핵심은 최재형의 무기 지원이었다. 최재형은 러시아 군인들로부터 최신식 무기인 모신 소총을 들여왔다. 모신소총은 가볍고 유효 사거리가 길어서 당시 일본의 주력 소총인 38식 소총에 비해 성능이 앞섰다. 당시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패해 일본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최재형은 그런 러시아 군인들을 설득해 응원을 이끌어 냈다. #최재형#러시아 #항일의병 #결합 #동의회 #창설#러시아 #최초 #한글신문 #해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