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고 박진경 대령은 어떻게 ‘6·25 참전유공자’가 됐나 / KBS 2026.02.13.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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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고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문제가 해를 넘기고도 논란의 종지부를 찍지 못했는데요. 박진경 대령의 을지무공훈장 공적 요지가 담긴 정부 문서를 KBS가 확인했습니다. 6·25 전쟁 발발 전 사망했는데도, 그의 공적 요지는 6·25 참전 유공으로 명시돼 있었습니다. 보도에 임연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이재명 대통령이 고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열린 부처 업무보고 자리. 이 대통령은 제주 도민이 분개하고 있다며 국가유공자 근거를 따져 물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지난해 12월 : "(박진경 대령) 이분이 48년에 사망했는데 6·25 참전 유공자로 훈장을 받았다는 게 팩트예요?"] [이두희/국방부 차관 : "6·25라는 것은 아니고. 국가 안전 보장과 전몰장병에 대한 훈장으로. (6·25로 특정된 건 아니고?) 그렇습니다. 특정돼 있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사실인지 국가기록원 문서를 확인했습니다. 박진경 대령이 훈장을 받은 해인 1950년 생산된 문서. '6·25 을지무공훈장1'이라고 적힌 겉표지를 열어보니 색이 바랜 종이 위로 '11연대 박진경' 이름이 확인됩니다. 6·25 참전 유공자들 이름 사이로 박진경 대령이 섞여 있는 겁니다. 국가기록원에 함께 보관된 또 다른 문서. 박진경 이름 옆으로 소속 직급과 훈격, 수여 일자가 명시됐고, 그의 공적 요지는 '육이오 참전 유공'이라고 적혔습니다. 두 개의 문서 모두 박 대령이 받은 훈장과 6·25 전쟁을 연관 짓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6·25가 발발한 1950년 6월보다 2년 앞서 사망했습니다. 미군정 당시인 1948년 5월 4·3 진압을 위해 제주로 부임한 그는 무고한 양민까지 포함해 강경 진압을 하다 같은 해 6월 부하에게 살해됐습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해당 문서는 국방부가 아닌 행안부 관리 사안이라서 확인이 제한된다고 밝혔습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박 대령의 공적을 '6·25 참전 유공'으로 분류한 건 맞지만 수십 년 전 작성된 문서라서 당시 작성 경위를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박진경 대령 유공자 등록 취소 검토를 지시한 지 벌써 두 달째, 국가보훈부는 여전히 법리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임연희입니다. 촬영기자:한창희/그래픽:서경환 ▣ KBS 기사 원문보기 : http://news.kbs.co.kr/news/view.do?nc... ▣ 제보 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 이메일 : kbs1234@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박진경대령 #4.3 #국가유공자 #을지무공훈장 #지역뉴스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