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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참나 #깨달음 #수행 #불교 #종교 #명상 #신앙 사람들은 오로지 ‘나’의 이익으로 움직입니다.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이것은 인류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심리가 움직이는 방향을 잘 헤아리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됩니다.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치권력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교리로 내세워야 그 종교가 번성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싯다르타는 참으로 우매한 분입니다. 왜냐하면 싯다르타는 사람들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고 원법의 전달에만 힘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니 ‘신앙’이라는 상품이 가장 잘 팔릴 수밖에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앙’ 다음으로는 힌두교의 ‘참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참나’는 가짜 ‘나’만 털어내면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다가 그 품질이 창조주 브라만과 차이가 없습니다. 가아(假我)가 모호하다면 ‘몰라’를 주입해 멍 때리거나 카타르시스(katharsis)를 느껴도 ‘참나’를 찾게 됩니다. 이처럼 ‘신앙’과 ‘참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고품질과 편리성을 두루 갖췄고, 그래서 종교계와 수행계를 이끌어 가는 명실상부한 쌍두마차입니다. 그런데 신성불가침과 같던 ‘신앙’과 ‘참나’를 거부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로 싯다르타입니다. 그는 ‘無我’를 들고 나와 이것들을 부정함으로써 사람들의 희망을 완전히 꺾어버렸습니다. 싯다르타는 종교적 구원 같은 것은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였고, 당시 사회의 절대적 명제였던 ‘참나(아트만)’마저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사실 ‘신앙’과 ‘참나’가 없다면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싯다르타는 자신의 소신대로 그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 소신이 바로 불교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싯다르타의 뜻을 잘 간직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