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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1957년 10월 4일 낮 12시 41분, 주한미군방송 TV 프로그램이 첫 전파를 타고 수도권 전역에 퍼져나갔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AFKN(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은 최초의 국내 공중파 방송인 KBS TV보다도 4년이나 빨리 TV방송을 시작했던 셈이네요. 1976년부터는 컬러 방송이 송출되고 1996년 5월 30일 그 막을 내리기까지 '2번' 채널 하면 모두가 AFKN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 AFKN은 '미군'들을 위한 방송이었지만 TV만 있으면 공중에 날아다니는 전파를 잡아 시청할 수 있었기에, 수도권의 많은 시민들이 즐겨 보기도 했지요. 영어를 배우기 위한 좋은 수단이기도 했고, 국제 사회의 소식들을 접하기도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이 AFKN은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대다수가 미국 내에서 인기있는 프로그램들을 재방영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군인'들이 좋아할만한 드라마, 스포츠, 오락 등으로 편성이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자면, 타국 땅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컨텐츠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말초적이고 자극적이며 짧은 시간에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대다수였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문화는 '미군'들의 그것에 의해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한국 대중가요 또한 이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신민요와 트로트 리듬으로 대변되던 1940년대까지의 음악은 서양의 리듬을 받아들이게 되고, 특히 빠른 템포의 부기우기(Bogie Woogie)나 스윙(Swing), 나아가 라틴 음악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미군들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쿠바로 건너온 노예들이 스페인의 음악스타일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발생한 아프로큐반(Afro-Cuban)음악은 룸바(Rumba)라는 장르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사실 쿠바의 음악이 어떤 스타일이냐고 묻는다면, 쿠바의 전통음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원주민들이 멸망하면서 그들만의 색채는 남아 있지 않은 채로 스페인(에스파냐)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대거 쿠바로 유입되는데, 이 때 흑인들이 에스파냐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장르로 만들어 진 것이 룸바의 시초입니다. 1930년대 룸바의 유행 이후 이를 바탕으로 재즈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보다 대중적인 '맘보'라는 장르가 발생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맘보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AFKN이 방송을 시작할 즈음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가 편할 것 같네요. 물론 오늘 소개해 드리는 '닐리리 맘보'가 정통 맘보 스타일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쿠바의 맘보와 비교해 보면 오히려 신민요 '늴리리야'에 더 가까운 느낌이지요. 시대적인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서글픈 음악보다는 플로어에서 춤을 추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더 큰 인기를 끌던 시기였기에 '닐리리 맘보'와 같은 노래들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후에도 아프로큐반 계열의 음악은 우리 대중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되고 맘보의 뒤를 이어 차차차(Cha-Cha-Cha)가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 '닐리리 맘보'의 주인공 김정애 선생님은 1935년 생으로 21세가 되던 1956년에는 대구 공군비행장에서 전화 교환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KBS에서는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전국노래자랑'의 시초 격이라고 봐야할까요. 라디오 방송 뿐인 시절이었지만 그 인기는 엄청났다고 하네요. 전국 각지의 지자체와 기관들이 이 프로그램의 공개방송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대구의 공군기지에서도 '노래자랑'을 개최하게 됩니다. 이 방송을 통해 세간에 그 이름을 알린 이가 바로 김정애 선생님이었습니다. 전화 교환원답게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덕이었을까요. 심사위원장이었던 김창구 KBS 음악계장의 권유로 그날로 전화교환원 직을 내려놓고 KBS 전속가수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현대판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라 할 수 있겠네요. 김정애 선생님은 그 길로 서울에 와서 음반을 취입하게 되고 대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 곡이 바로 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의 '앵두나무 처녀'입니다. 1956년 앵두나무 처녀로 소위 '대박'을 치고 이듬해인 1957년에는 '닐리리 맘보'로 대형사고까지 치게 되지요. '닐리리 맘보'는 요즘은 흔히 듣기는 힘들지만 예전에는 야구 경기장에서도 응원가로 사랑받았던 노래입니다. 맘보곡 중 언니(?) 격인 심연옥 선생님의 '도라지 맘보', 전영주 선생님의 '아리랑 맘보'가 1955년 큰 관심을 받았지만 '닐리리 맘보'는 그야말로 맘보의 전성기를 가져다 준 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정다운 우리 님 닐리리 오시는 날에 홍수에 비바람 닐리리 비바람 불어온다네 님 가신 곳을 알아야 알아야지 나막신 우산 보내지 보내드리지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춘삼월 봄바람 닐리리 불어오며는 나뭇가지마다 닐리리 꽃잎은 떨어진다네 우리 님 언제 오시나 언제 오시나 야속히 울려만주네 울려만주네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야 맘보" 탁소연 작사, 나화랑 작곡의 '닐리리 맘보'는 당시 KBS 경음악단의 지휘자였던 조광환(曺曠煥) 선생님이 작사,작곡한 노래입니다. 좀 의아해하실수도 있겠지만, 나화랑(羅花朗)이라는 이름은 조광환 선생님의 작곡 필명으로 '무너진 사랑탑', '향기 품은 군사우편', '청포도 사랑', '열아홉 순정', '울산 큰애기'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셨습니다. 탁소연이라는 이름은 조광환 선생님의 부인이라는 설도 있지만 한 사람이 작사와 작곡을 동시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대적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작사가로서의 또 다른 필명을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유력합니다. 조광환 선생님은 '나그네 설움'의 작사가이신 '고려성'(高麗星) 조경환(曺景換) 선생님의 동생으로도 유명하지요. 조광환 선생님은 대한민국 1세대 작곡가로서 일제에 의해 사라져가는 우리 민요와 전통음악을 보전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민요를 수집하고 음반으로 남기는 활동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수익성이 없는 이런 작업으로 인해 경상북도 김천의 부자로 통했던 집안이 몰락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음악을 사랑했던 '나화랑' 선생님의 열정이 가풍으로 전해졌던 것일까요.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조트리오' 3형제가 바로 조광환 선생님의 자제분들이라고 하네요. 조규천, 조규만, 조규찬 씨. 한국 대중음악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멋진 이름들입니다. 어느덧 봄의 중심에 서서 이 계절을 소재로 한 노래들을 여러분들께 차례차례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유독 봄을 노래한 곡들이 많아서 어떤 곡부터 들려드릴까 즐거운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신나는 '닐리리 맘보'를 들으며 더욱 활기차고 즐거운 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