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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영주-안동전투 #5, 북한군 12사단은 옹천리-오운리 선에서 사단 정면으로 침공하는 한편 일부가 예안으로 우회하여 동측방을 위협할 것이다. 5 месяцев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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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영주-안동전투 #5, 북한군 12사단은 옹천리-오운리 선에서 사단 정면으로 침공하는 한편 일부가 예안으로 우회하여 동측방을 위협할 것이다.

7월 28일 12시 국군 8사단장 이성가 대령은 21연대가 397고지-봉수산 선에서 북한군을 저지하자, 이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 무렵에는 예천 방면에서 풍산으로 접근한 북한군 8사단이 안동을 서쪽에서 위협하고 이와 때를 같이해 예안 북쪽에 단대호 미상의 새로운 북한군이 나타나 국군 8사단 방어지역 동쪽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성가 대령은 397고지-봉수산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취소하고 5번 도로와 예안에서 안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동시에 방어할 수 있는 안동 외곽에 2개의 방어선을 설정하여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이성가 대령의 작전계획은 지형 구조상 안동에서 오랫동안 버티기 어려운 만큼 조만간 낙동강-반변천 선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할 것이란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국군 8사단은 7월 28일 예하 부대에 작전명령 제26호를 하달했습니다. 1. 정면의 북한군 12사단은 텃골-옹천리-오운리 선에서 사단 정면으로 침공하는 한편 일부가 예안 쪽으로 우회하여 동측방을 위협할 것이다. 또한 예천 쪽으로 우회한 북한군 8사단 일부는 옥천리-신월리에서 내성천을 도하하여 서측방을 위협할 것으로 판단된다. 2. 사단은 이 적을 저지 격멸하여 안동을 방어하려 한다. 3. 수도사단 1연대가 풍산 부근에서 사단 서쪽 측후방을 엄호할 것이다. 4. 16연대는 우일선으로서 293고지-282고지-280고지 선을 확보하고 예안에서 안동으로 들어오는 933번 도로를 방어하라. 5. 21연대는 중앙일선으로서 319고지-연곡리-217고지를 확보하고 적의 정면 공격을 격파하라. 6. 10연대는 좌일선으로서 도계촌-204고지-394고지를 확보하고 학가산(711m)으로 잠입한 공비들을 분쇄하면서 적을 포착 섬멸하라. 7. 공병대대는 구장터 부근의 고지를 확보하라. 옹천에 이르는 도로를 파괴하고 장애물을 부설하여 적의 기갑부대 침공에 대비하면서 대전차공격을 전담하라. 8. 18포병대대는 50포병대대 1포대를 통합 지휘하여 군단 화력계획에 의거 사단을 일반 지원하라. 9. 통신은 반드시 암호를 사용하라. 10. 사단지휘소는 신기리에 위치한다. 6.25전쟁에 대한 많은 영상이 있지만, 기초적인 사실 조차 확인하지 않은 영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도 조차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 형편입니다. 6.25전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여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참전했던 국군과 미군의 회고록, 미국 논픽션 전쟁사 작가의 간행물, 중공군 참전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가장 정확한 6.25전쟁 정보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3년 1개월 2일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민족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상처를 남긴 채 종전이 아닌 휴전의 형태로 정지된 비극적 전쟁입니다. 자유진영 전사자는 한국군 149,005명,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40,306명 등 189,311이 희생되었습니다. 공산진영은 북한 294,000명, 중공 197,653명, 소련 315명 등 491,968명이 전사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을 포함하여 5,991,48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5,991,484명의 희생자 중 5,218,480명이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인명 피해로만 본다면 고구려-수나라 전쟁, 고려-몽골 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대외전쟁을 합친 것 보다 많습니다. 불과 70여 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은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참고자료] 6.25전쟁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주요전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영웅(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중국군의 한국전쟁사(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 낙동강(류형석, 플래닛미디어), 6.25전쟁 징비록(백선엽, 책밭),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권주혁, 지식산업사), 6.25전쟁과중공군(박실, 정미디어), 6.25전쟁(존 톨랜드, 바음),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헬버스템, 살림), 이런전쟁(T. R. 페렌바크, 플래닛미디어), 6.25전쟁에서의 소부대 전투기술(러셀 구겔러, 북갤러리), 중국군의 한국전쟁사(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한국전쟁(왕수쩡, 글항아리), 중국이 본 한국전쟁(홍학지, 한국학술정보), 항미원조(리펑, 다른생각) [영상 출처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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