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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365는 인기 가수들의 공연, 한국 가요 100년의 명곡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옛날을 추억 하며 노래로서 그 시대의 애환과 사랑을 함께 공유합니다. 고복수는 경상남도 울산 출생이며, 호적상으로는 1912년생이나 실제 생년은 1911년입니다. 그의 아내 황금심(黃琴心)도 광복 전후 최고의 인기 여가수입니다. 1933∼1934년 콜럼비아 레코드사 주최 조선일보사 후원의 전국남녀가수신인선발대회에서 3등으로 입상, 가요계에 등장하였으며,1934년 손목인(孫牧人) 작곡의 「타향」(후일 「타향살이」로 개칭)과 「사막의 한」을 불러 인기가수가 되었고, 1939년까지 오케 레코드사의 전속 가수로 활약하면서「짝사랑」·「휘파람」·「이원애곡(梨園哀曲)」·「풍년송(豊年頌)」등을 불러, 인기의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1942년 이후 「풍년송」을 부부가 열창하였고,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도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 전옥(全玉)이 주관하던 백조악극단(白鳥樂劇團)의 주요 단원으로 활약하였습니다. 1957년 8월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가수 생활 25년을 결산하는 은퇴 공연을 가졌고, 1959년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자리) 5층에 동화예술학원(東和藝術學院)을 개설,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 학원을 경영하면서 이미자(李美子)·안정애(安貞愛) 등의 인기 가수를 배출하였습니다. 1959년 극영화 「타향살이」를 제작하였으나 흥행에 실패하여 서적 외판원 등으로 전전하며,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가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로는 북한의 인민배우로 알려진 김연실이 1929년 처음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후 1930년 강석연이 이 노래를 다시 부른 이후 70년대 고복수가 서라벌 레코드를 통하여 재 취입 한 것이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