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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3월 20일 덕수궁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 사람들은 38선 철폐, 남북한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미소공동위윈회의 우선 과제는 신탁통치 실시를 위한 임시정부 구성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임시정부 참여정당 결정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소련 대표 스티코프는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정당과 단체들만 임시정부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통일된 한반도에 반소정부가 세워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미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미소공위는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결렬됐다. 소련군의 한반도 남쪽 점령을 저지하기 위해 편의상 그었던 38선은 미소공위의 실패로 민족을 분단시키는 거대한 경계선이 돼버렸다. 북한은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한다. 임시법령 제정권을 가진 사실상 정부의 탄생이었다. 이후 북한 전역에서 인민위원회 선거가 실시되고, 임시인민위원회는 정식 통치기구로 정비,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북한은 사회주의로의 변혁작업을 전개했다. 최우선적으로 시행된 것은 토지개혁이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은 단 20여 일 만에 신속하게 완료됐고, 이후 주요 기간산업도 90% 이상이 국유화됐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38선#김일성 #북조선 #인민위원장#북한토지개혁#국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