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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곧장의 일

다음은 천목 중봉 스님의 『선을 묻는 이에게(산방야화)』에 나오는 글 ‘교종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달마스님의 선은 다릅니까?’의 전문입니다. ◎◎◎ 어떤 이가 물었다. “교종의 여러 가지 언설과 달마스님의 바로 가리키는 법문에 같은 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화엄경(華嚴經)』에서 ‘일체법이 그대로 마음의 자성임을 알면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깨달아 지혜의 몸을 성취한다’고 하였고, 『법화경(法華經)』에서 ‘이 법은 사량분별로써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금강반야경』에서 ‘모습이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하다’ 하고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은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원각경(圓覺經)』에서는 ‘이것이 헛꽃인 줄 알면 윤회의 굴레가 없을 것이며 몸과 마음도 생사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고, 『능엄경(楞嚴經)』에서는 ‘근(根)과 6진이 같은 근원이므로 속박과 해탈이 둘이 아니다’하고 ‘지견에서 앎을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경론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수없이 나옵니다. 그러니 어찌 달마 스님의 바로 가리키는 법문이 있고 나서야 그런 것이겠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이런 문자들은 총지(總持)를 드러내는 것뿐 입니다. 진실로 자기 마음 깊이 한 번이라도 깨달아보지 못하면 부질없이 약(藥)만 늘어놓을 뿐 병을 고치지는 못합니다. 만약 한 번이라도 본성에 계합하여 깨달았다면 어찌 대승 경론의 구절들만 달마스님의 선과 일치한다고 주장하겠습니까. 하찮은 이론과 바람 소리나 빗방울 소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마스님이 전한 바로 가리키는 법문과 계합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언어와 형상을 떠난 자리에서 자기 본성에 계합하지 못하고 대승 경론의 그럴듯한 말만 기억한다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옛사람들이 ‘마음 밖의 것에 의지해 견해를 낸다면 스스로 깨닫는 길을 막는 꼴이다’고 말씀하시고, 금가루가 눈에 들어간 것으로 비유하신 것이 꼭 들어맞습니다. 참선하는 납자들은 이 점을 마음에 깊이 새겨 스스로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어찌 경전의 문자만 유독 달마스님의 바로 가리키는 이치와 일치하지 않겠습니까? 선종 문하에서도 2조 혜가스님의 안심(安心)과 3조 승찬스님의 참죄(懺罪)와 남악스님이 벽돌을 갈고, 청원(靑原)스님이 발을 늘어뜨린 것으로부터, 비마스님의 나무집게와, 설봉스님의 공굴리기와, 덕산스님의 매질과 임제스님의 할에 이르기까지 1,700칙의 기연이 모두 이 여덟 글자(直指人心見性成佛, 不立文字教外別傳)를 부수고 열어 두 손으로 분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당장 어떤 물건이라도 생겼다 하면 간격이 벌어지고 장애가 됩니다. 그대가 자기 자신에게서 철저히 깨닫지 못하고 알음알이(意識)를 가지고 으뜸 원(元)자 한 자라도 알아차려 마음속에 기억해 둔다면 ‘기름이 국수에 들어가듯 온갖 잡독이 심장에 들어갔다’ 하는 것이며, 또 ‘제호(醍醐) 의 맛은 세상에서 제일이지만 이런 사람에게는 도리어 독약이 된다’는 경우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달마스님의 바로 가리키는 법문은 마음을 이용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발 들여놓을 틈도 없고, 손에 닿지도 않는 곳입니다. 이 자리는 직접 자신의 본성으로 미끄러지듯 한걸음에 성큼 밑바닥까지 쑥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이해하고 상응했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침 뱉고 팔 흔드는 등의 하찮은 일까지 모든 행위가 저절로 마음속에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사자가 친구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말한 1,700공안마저도 여우가 흘린 침에 잡다한 독이 들어 있는 것처럼 쓸데없는 소리인 줄 알게 됩니다.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바깥 경계에 휘둘리겠습니까. 애석합니다. 때로 총명하다고 자처하는 무리들이 스스로 깨달으려 하지는 않고 밤낮으로 잡다한 독 구덩이 속에 웅크리고 앉아 헛된 짓만 일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향상이니 향하니, 전제니 반제(半提)니, 최초(最初)니 말후(末後)니, 정안(正按)이니 방고(旁敲)니, 조용(照用), 주빈(主賓), 종탈(縱奪), 사활(死活) 등등으로 사방팔방 쓸데없는 주석을 끌어들여 억지로 이론을 세우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자기 종파의 중요한 핵심이라 받들며 후인들을 현혹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선배들의 문장과 이론만 비판 검토하여 평가하기도 합니다. 즉 어떤 선배의 말씀은 ‘전제와 향상이기 때문에 곁가지는 모두 잘라 버렸다’고 평가하고, 어떤 선배의 말씀은 ‘참신하고 솜씨 있게 고금을 요리하였다’고 평가하며, 어떤 선배의 말씀은 ‘선을 무미건조한 것으로만 이야기하였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만 가지로 비교하고 헤아리나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크게 통달한 선배들은 가슴이 확 트여 속에 한 물건도 남겨 두지 않았으므로 상황을 만나 바깥 물건에 응할 때 그저 손 가는 대로 했을 뿐, 애초부터 이리저리 궁리하여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번개처럼 해 버려야지 자취를 더듬다가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 되고 맙니다. 더구나 어찌 사량 분별에 얽매여 선사들의 빼어난 기연을 희통하고 교묘한 말을 꾸며서 후배들을 부채질하고, 그들에게 자기주장을 떠받들도록 유혹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선배들은 상대방을 근기에 알맞게 지도할 때 그 내용을 추세(麤細), 현밀(顯蜜), 광략(廣略)등으로 다르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진실한 마음에서 그런 것이지 애초부터 조작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커다란 범종과 북이 사람이 두들기는 대로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크고 작고 맑고 탁한 그 소리는 본래 북이나 종이라는 하나의 정해진 그릇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릇의 성능이 좋지 못하다고 하여 거기에다 눈곱만큼이라도 다른 소리를 첨가시키면 그 고유의 음색을 잃고 맙니다. 요즘 선(禪)을 한다는 작자들은 그저 큰 선상에 앉아 주미(불자)를 휘두르기 위해 우선 여러 스님들이 말한 요점을 모으고 간추려 기억하고, 심지어는 여러 학파들의 잡설까지도 섭렵하여 말 밑천을 삼기도 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선을 입으로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다른 사람의 속박을 풀어 주기는커녕 끝내는 자신의 진면목을 잃고 나아가 자신의 도안(道眼)마저도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잘못 수행하여 놓고도 자기들끼리 서로 서로 추종하고 숭상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종문의 큰 기대를 저버립니다. 여기 어디에 소위 총림(叢林)을 세우고 결사를 일으킨다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세존이 세상에 출현하시고 달마스님이 인도 땅에서 오신 목적을 살펴보면 모두 사람의 속박을 풀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애초부터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본래 맑고 깨끗한 한 조각의 자기 바탕을 망령되게 끝없는 빛깔과 소리로 물들여 결국 발 디딜 틈도 없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를 떠나 애정을 끊고 출가해 스승에 의지하여 도를 배우면서도 출가 이전의 번뇌를 씻어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쓸데없는 허다한 이론을 거기에 첨가하여 자신의 본심마저 점점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가여울 뿐입니다. 이 때문에 선배 스승들이 쓴웃음을 금치 못하고 세상에 나와 하나의 기연을 토하고 하나의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취모검으로 저네들이 애지중지하던 곳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생사의 명근(命根)을 끊어주려 하였습니다. 이는 진실한 자비심으로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찌 자신들의 사사로운 명예를 위해 가풍을 준엄하게 높여서 후학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한 일이겠습니까. 크게 통달한 선배들은 모두가 처음 자기 일을 분명히 밝히지 못했을 때는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이리저리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의심을 풀려고 노력했습니다. 홀연히 어려운 화두(話頭)에 부딪쳐서 확실히 깨치지 못하면 마치 따가운 밤송이를 삼킨 듯이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원수를 만난 것처럼 용맹스럽게 정진하기도 했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하며 추위와 더위도 모두 견디고 잠자고 먹는 일마저 잊어버렸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한순간도 화두를 놓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쉽게 풀어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문자나 언어에서 찾으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 참된 기연 스스로 드러나 의심 덩어리가 풀리고 나서야 그만두었습니다. 종문이 생긴 뒤부터 소위 깨달았다는 사람치고 이렇게 하지 않은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같이 발꿈치가 은밀하였고, 비록 걸음걸이가 느려 보이나 그 힘은 마치 사자가 여러 동물들을 놀라게 하여 도망치게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하여 각 종문에서는 위와 같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수행의 방법을 설명하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 #진리 #선불교 #선림고경총서 #산방야화 #천목중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