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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소년, 원수의 노예가 되다 1593년 진주성을 함락한 왜군은 조선인 7만 명을 학살했고, 경남 내륙지역까지 진출했다. 경남 산청에 살던 남양 홍씨 일가는 마을 뒷산 동굴로 피신했다. 그 도중에 가족들이 흩어지게 되었고 홍호연은 적장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부대에 붙잡혀 일본 규수 사가에 포로로 끌려가게 됐다. 당시 그의 나이 열 살이었다. 무사도 교육을 받은 소년, 일본 최고의 문필가가 되다 홍호연은 나카노진우에몬에게 맡겨졌다. 그는 일본 무사도의 교과서라 불리는 ‘하가쿠레’의 모델이 된 전설적 사무라이였다. 유교의 나라 조선의 소년은 가장 철저한 사무라이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의 소년 포로는 일본 주인의 마음에 따라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소모품이었다. 소년이 목숨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은 붓이었다. 그는 꾸준히 정진해 ‘혹부리 체’라는 독자적인 서체를 구축했고 문필가로 크게 성공했다. 포로의 삶을 대물리고 싶지 않았던 홍호연의 담판 60년을 사무라이로 살면서도 포로로 잡혀 온 때를 결코 잊지 않았던 홍호연은 70세의 나이에 귀향을 시도한다. 그러나 영주의 만류로 귀국이 좌절되자 그는 자신의 지위와 봉록을 자손들에게 상속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6년 후 영주가 사망하자 76세의 홍호연은 그를 따라 할복 자결한다. 조선 포로 출신으로 어느 누구보다 충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처지에 있던 홍호연에게 할복 자결은 조선 포로의 후예인 자손들에게 사회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400년 만에 귀향하다 홍호연의 12대손 고우 요시로가 가문 대대로 전해지던 그의 유품을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홍호연의 사연은 세상에 알려졌다. 2010년 11월 국립진주박물관은 나고야성 박물관과 함께‘ 임진왜란 조선인 포로의 기억’ 교류전을 열면서 홍호연의 유작들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전역에 살던 그의 후손들도 한국에 와서 경남 산청의 남양 홍씨 일가와 가족 상봉을 했다. 홍호연이 일본에 끌려간 지 417년 만의 귀향이었다. 신역사스페셜 58회 – 소년포로, 400년 만의 귀향 (2011.2.10.방송) http://history.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