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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종심(趙州從諗, 778년~897년) 조주종심은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4년)의 제자이다. 조주는 산동성(山東省) 조주(曹州) 출신으로 어려서 조주의 호통원(扈通院)에서 출가하였다. 이후 남전의 제자가 되어 법맥을 받았다. 그는 80세까지 행각을 하다, 80세가 넘어서야 하북성(河北省) 조주현(趙州縣) 관음원에 주석했다. 조주는 이 관음원에 머물며, 세납 120세의 장수를 누린 선사다. 조주가 스승 남전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아직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이었다. 남전선사가 양지바른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사미승 조주가 찾아왔다. 남전은 조주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예,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이라! 그럼 상서로운 모습을 보았는가?" 남전은 조주의 의중을 떠보았다. 그러자 조주가 대답했다. "아뇨, 상서로운 모습은 보지 못했고, 다만 와여래(臥如來)를 보았습니다." 남전은 '이 보통 사미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일어나 다시 물었다. "자네는 임자가 있는가(스승이 계시는가)?" 사미 조주가 "네,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다시 남전은 "임자가 어디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조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남전에게 절하면서 말했다. "아직 추운 계절인데 (남전) 스승님께서 존체 만복하시니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공안, 화두에는 조주의 선문답이 많이 있다. 조주의 선문답은 간화선의 종문서인 [무문관] 과 [벽암록] 등에 전한다. 이를 중심으로 몇 가지만 보기로 하자. 한 수행자가 조주에게 물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모두 내려놓아라(放下着)."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얼 내려놓으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거라(着得去)."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관념조차 내려놓아야 한다. 곧 무심의 경지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 무심이라는 것조차 마음에 들고 있다면 결국 집착과 관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를 찾아와 말했다. "저는 방금 이 곳에 왔습니다. 큰스님께서 잘 지도해 주십시오." "죽은 먹었느냐?" "예" 그럼 밥그릇이나 씻어라(洗鉢盂去) 한 승려가 조주에게 물었다. "스님, 인생에서 가장 다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조주선사가 갑자기 일어서며 말했다. "오줌 좀 눠야겠다. 이런 사소한 일도 몸소 이 늙은이가 해야 하는구나." 하루는 성덕군(成德郡)의 절도사 조왕(趙王)이 조주를 찾아왔다. 마침 조주는 선상위에 앉아 있었는데, 내려오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소승이 어려서부터 일을 많이 해 노쇠해서 선상에서 내려오기 힘듭니다." 조왕은 조주에게 정중히 예를 올리고 떠났다. 다음 날 조왕은 한 장군에게 명을 내려 조주에게 소식을 전했다. 장군이 와서 조주에게 예를 올리자, 조주는 선상에서 내려와 정중하게 그를 맞이했다. 이 점을 괴이하게 여긴 제자가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어제 왕이 왔을 때는 선상에서 내려오지도 않더니 오늘 장군이 오니까 선상에서 내려와 영접하시네요." "일등 가는 사람이 오면 선상에 앉아 맞이하고, 중등 가는 사람이 오면, 선상에서 내려와 맞이해야 한다. 하등 가는 사람이 오면 대문 밖까지 나가 맞이해야 한다." 조주가 조주에서 40여 년 관음원에 있는 동안 조왕은 몇 차례 왕부(王府)로 청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또한 조왕은 조주에게 사찰을 지어 공양 올렸으나 이 또한 받지 않았다. 이런 조주의 덕성을 알고 있던 조왕이 소종(昭宗,. 888~904 재위)에게 상소를 올려 조주는 가사와 진제대사(眞際大師) 시호를 받게 되었다. 조주가 조주성에 관음원에 머물고 있을 때, 승려가 찾아와 물었다. "'조주', '조주'하는데 조주란 본래 어떤 겁니까?" "조주에는 동문도 있고, 서문도 있으며, 남문도 있고, 북문도 있지(趙州東西南北)." 또한 제자들이 찾아와 법을 물으면 이 절에 처음 온 승려이든 두 번째 온 승려이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 한번은 원주가 물었다. "왜 스님께서는 처음 왔든 두 번째 왔든 똑같이 '차나 마시라'고 합니까?" 그러자, 조주가 "원주"하고 불렀다. 원주가 대답을 하자, 선사가 말했다. "차나 한잔 마시게." 한 승려가 조주에게 물었다. "달마조사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뜰 앞의 잣나무를 가리키며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출처: 현대불교에서 모셔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