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만고충신의 묘, 사육신역사공원, 단종복위운동, 하위지, 성삼문, 박팽년, 유성원, 이개, 유응부... 거열형, 절개, 지조, 단종 거사로 죽임을 당한 사람은 70여 명...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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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굳이 역사를 배우지 않았어도 사육신 정도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묘는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이나 9호선 노들역에서 가까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육신묘는 나라에서 묘를 조성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 덕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456년 단종복위운동이 김질과 정창손의 밀고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주모자를 비롯한 거사 참여자들은 하나같이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역사 기록만 보아도 당시 죽임을 당한 사람이 자그마치 70여 명에 이른다고 하죠. 이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육신인데요, 사육신이라는 말은 생육신인 '남효온'의 '추강집'이라는 책에 '육신전'이라는 이야기가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이 육신전에 나오는 인물들이 바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상문, 이개, 박팽년입니다. 그런데 거사가 탄로가 나 사지가 찢겨져 죽임을 당하던 날, 남몰래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고 하니, 그가 바로 역시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입니다. 목이 잘리고, 사지가 찢기고... 거사 참여자들은 3일 동안이나 저잣거리에 목기 걸리고, 사지가 이리저리 나뒹굴었다죠? 그걸 수습한 사람이 바로 김시습이고, 그가 마차에 시신들을 수습하여 노량진 언덕에 묘표를 하고 묻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성씨지묘, 이씨지묘, 박씨지묘, 유씨지묘'라는 묘지석이 나타났고, 자연스레 사람들 입에서는 사육신묘라는 이야기가 흘러다닌 것이죠. 그 이야기를 신하들이 듣고, 숙종에게 고했고, 조사를 한 뒤 신원을 회복해주고, 봉분을 만들어주고, 서원까지 세워준 것이죠. 이후 이들이 죽은지 300여년이 흐른 뒤 영조가 일제히 '충'자가 들어가는 시호를 내려주면서 정조가 신도비를 세워줍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죠. 묘는 7기인데, 이는 김문기가 1970년대 성역화 사업 때 끼어들어왔는데, 참 사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