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설 강론 [짧은 위령 기도, 연도의 두 시편 해설] 2026년 2월 17일,(이병근 신부) 영흥 성당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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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위령 기도, 연도의 두 시편 해설(설) - 마리아의 종 수도회 창설자 7성인 https://blog.naver.com/daumez/2241860... 깊은 구렁 속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시편 130(129)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시편 130편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며 불렀던 전통적인 참회 시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깊은 구렁'은 단순히 땅이 깊게 파인 곳이 아닙니다. 죽음의 세계이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대적인 무력함과 절망의 밑바닥을 상징합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은 이제 지상에서처럼 스스로 공로를 쌓거나 남은 벌을 보속할 수 없습니다. 철저히 무력한 상태에 놓입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이 시편을 소리 내어 바칠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인의 목소리가 되어드리는 것입니다. 고인을 대신하여 하느님의 자비에 절박하게 부르짖는 참된 사랑의 행위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하느님의 엄중한 정의와 심판 앞에 흠결 없이 설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시편 130, 3 참조)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고인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생전에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용서와 무한한 자비 덕분임을 우리는 선언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밤새 춥고 어두운 성벽 위에서 동이 트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파수꾼의 마음과 같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 하느님의 빛을 뵙기를 갈망하는 그 기다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벽은 늦어질지언정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풍요로운 구속'이 있음을 믿기에, 우리의 연도는 슬픔에 머물지 않고 굳건한 희망을 향해 나아갑니다. "요나가 바다 괴물의 뱃속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 부르짖었듯이, 하느님을 향한 부르짖음은 입술이 아니라 영혼의 가장 깊은 곳, 찢어지고 상처 입은 마음 한가운데서 터져 나와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 부서진 마음으로 청하는 새로운 창조, 시편 51(50) "하느님 자비하시니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오시니 저의 죄를 없이 하소서." 이어지는 시편 51편은 가장 널리 알려진 참회 시편, 이른바 '미세레레(Miserere)'입니다. 다윗 왕이 큰 죄를 저지른 후 뼈저리게 통회하며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순한 후회를 넘어 자신의 근원적인 나약함을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빚어 주시기를 청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아무리 선하게 산 신자라도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서는 흠과 티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지상 생활에서 다 치르지 못한 보속과 죄의 상처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연옥 영혼은 이제 하느님의 진리의 빛 앞에서 자신의 모든 부족함을 명확히 보게 됩니다("저의 죄 항상 제 앞에 있삽나이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 하느님께서 정화수의 채로 고인의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시편에서 가장 핵심적인 간구는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하소서" (시편 51, 12 참조)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은 죄를 한 번 눈감아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고인의 영혼이 천상 잔치에 참여하기에 합당하도록, 낡은 죄의 흔적을 지우고 완전히 정화되어 영적으로 새롭게 창조되기를 바라는 강력한 전구입니다. 다윗은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제물이 화려한 번제물이 아니라,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부서졌다'는 것은 절망에 빠졌다는 뜻이 아니라, 내세울 것 없는 나의 교만과 착각이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앞에서 완전히 가루처럼 부서져 내렸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그 어떤 가면도 벗어 던지고, 자신의 한없이 나약하고 가난한 처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참된 겸손의 상태입니다. 세상을 떠나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영혼들은 오직 하느님만을 온전히 바라보며 완전히 가난해진 상태, 즉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영혼의 가난함을 그 어떤 번제물보다 귀한 영적 보상으로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또한, 곁에서 눈물지으며 연도를 바치는 우리 공동체의 애통한 마음과 기도는 고인을 위한 훌륭한 영적 보속이 되어 하느님의 대전에 오르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께 바칠 합당한 제물을 찾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이 그 제물이 되십시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단 위의 짐승이 아니라, 여러분의 부서진 마음입니다. 교만으로 단단해진 옛 자아를 산산조각 내십시오. 그래야만 하느님께서 그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재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https://blog.naver.com/daumez/2241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