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적선지가로서 선대의 베품과 선비로서의 학식과 기풍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고택 / 일본 문화유산연구회원과 함께하는 북촌댁 탐방 / 河回村 / ハフェマウル (安東)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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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댁 역사 이 건물은 정조·순조 조에 초계문신과 예조·호조 참판을 역임한 학서 류이좌(鶴棲 柳台佐)의 선고(先考)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류사춘(柳師春)공이 정조 21년(1797)에 작은 사랑과 좌우익랑을 처음 건립하였다. 안채, 큰사랑, 대문간, 사당은 경상도도사를 지낸 그의 증손 석호 류도성(柳道性)이 철종 13년(1862)에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안채, 사랑채, 큰 사랑채, 대문간채, 사당 등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하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이다. 북촌댁은 석호 류도성 공의 별호(別號)인 수신와(須愼窩 : 모름지기 수, 삼갈 신, 움막 와 : 어려운 이웃을 의식해 언제나 삼가면서 겸손하라는 뜻)정신을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화경당 경제권을 가진 바깥주인이 기거하던 사랑이며 화경당 편액은 정조, 순조조에 초계문신과 예조, 호조참판을 역임한 학서 류이좌(鶴棲 柳台佐)공의 당호로 가족과 친족 간에 화목하고 임금과 어른을 공경하라는 뜻이며 충효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석봉 한호의 글씨이다. 북촌유거 가장 윗어른인 할아버지께서 거주하시던 사랑으로 간혹 외빈 접객용으로도 사용되었던 북촌유거는 정면 7칸, 측면 3칸 건물로 2칸 방 2개, 1칸 방 2개, 4칸 대청, 3칸 누마루, 3칸 규모의 정지와 그 위에 같은 크기의 다락, 그리고 5칸의 퇴, 5쪽의 쪽마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굴도리 5량으로 하였으며, 집 외부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고, 기둥 상부 보아지 안쪽을 초각하고, 장여 밑에 소로 받침을 두고 문은 띠살창호와 울거미널문을 혼용하였다. 누마루에 앉으면 하회마을의 3대 풍광을 동시에 볼 수 있는데 정면 동쪽으로는 하회의 주산(主山)인 화산(花山)을 마주하며, 북쪽으로는 부용대와 낙동강을, 남쪽으로는 남산과 병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방 사이의 미닫이문과 방과 대청 사이 5분합 비대칭 들어열개문을 올릴 경우 건물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 뒤에는 하회를 감싸고 흘러가는 낙동강의 형상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수령 약 300여 년의 한국소나무 한 그루가 그 멋을 더한다, 북촌유거 현판은 조선 말엽 철종 때의 명필인 해사 김성근의 글씨로 북촌이 기품있게 기거하고 있다는 뜻이다. 출처 북촌댁홈페이지에서 北村宅(ブッチョンテッ) 村の北側を代表する建物のひとつ。1862年に建てられた、朝鮮時代の典型的な両班屋敷。家をかわら張りにしたり、門を高くするにはある程度のステイタスが必要だったようで、北村宅はかなりの家柄だったことが伺え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