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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류 '신라人 최치원' / 안동MBC 5 лет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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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류 '신라人 최치원' / 안동MBC

2019/05/10 13:29:42 작성자 : 홍석준 ◀ANC▶ 신라시대에도 한류스타가 있었습니다. 빼어난 문장으로 당나라 관료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신라 유학생 '고운 최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올 하반기 그의 호를 그대로 따온 의성 고운사에 최치원 문학관이 문을 엽니다. 홍석준 기자 ◀END▶ 서울을 방문한 중국 시진핑 주석이 한중관계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인용한 싯구. ◀SYN▶시진핑 중국 국가주석(2014.7) 천년 전 신라 유학자 고운 최치원의 시입니다. 중국에서 최치원은 한중 문화교류의 상징입니다. 관련논문만 500편이 넘고, 최치원 이름을 붙인 도로부터 기념관, 중국의 명품 찻주전자, 심지어 학생들의 역사수업에도 연이어 등장합니다. ◀SYN▶렌밍낭 중1년/중국 양저우 "저는 최치원 선생이 매우 총명했을 걸으로 생각합니다.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중국에 유학 와서 열심히 공부해 17세에 과거에 합격했다고 배웠습니다. 저도 최치원 선생을 본받아 열심히 공부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생전 그의 명성은 어린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빼어난 글솜씨에서 시작됐습니다. 특히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점령당한 '황소의 난' 당시, 적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항복권유 문서 '토황소격문'은, 최치원을 일약 당대 최고의 문장가 반열에 올려놨습니다. ◀INT▶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죽은 사람 뼈를 갉아먹는다는 식으로 쳐놓고 그래도 너희들을 살려주는 거는.. 해놓고 약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 또 들이치고 그러니까 그 글을 읽어보면 중국이나 일본사람에 없는 강유, 강유, 멍석말이가 있는거예요. 풀었다, 감았다, 풀었다, 감았다.." 당나라 생활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한 최치원은, 능력중심의 국가운영 원칙을 담은 '시무십여조'를 진성여왕에게 제출했지만, 귀족들의 반발로 결국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INT▶최병한/경주 상서장 관리책임자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참 신라가 5~600년을 들어가서 고운 선생의 시무십여조 대로 했다면 한 5~600년을 더 갔는데 하는 그런 아쉬움을.." 최근 국내에서도 최치원 유적이 남아 있는 전국 9개 지자체가 최치원 관광전략 찾기에 나섰습니다. 의성군은 최치원이 말년 집필활동을 벌였던 고운사 옆에 최치원문학관을 올 해 개관합니다. ◀INT▶김주수 의성군수 "1,200년 전 중국과 일본에 한류를 일으킨 '원조한류' 최치원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의성 고운사의 대내외적 위상을 높이고, 최치원의 사상과 생애를 통해서 의성의 새로운 정체성을" 안동MBC는 최치원의 독특한 생애와 의미를 지금 국내외 상황에 맞게 재조명한 특집 2부작 최초의 한류, 최치원을 이번주 일요일과 다음주 일요일, 2주에 걸쳐 방송합니다. MBC 뉴스 홍석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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