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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피해자 : "매일 바다 밑으로 천척(300m)이야. 천척을 들어간단 말이야. 그래야 석탄이 나오기 때문에" 녹취 김민철 : "중국인이나 한국인에 대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 그런 부분들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은채 단지 동양에서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던 시설이라는 그 명분만 가지고..." 녹취 호사카 유지 : "메이지 시대 침략의 중심지가 포함되어 있다라는 것, 그것은 대단히 우려해야 하는 내용이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남서쪽으로 약 290킬로미터. 제주도 10분의 1 정도 면적의 작은섬 미야코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히는 마에하마 등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2차대전 말기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녹취 "발이 미끄러지니까 조심하세요" 열대림을 지나자, 큰 동굴이 나타납니다. 녹취 시미즈 하야코(미야코 주민) : "포대를 만들기 위해서 일본군이 진지로 삼았던 장소입니다. 기계는 쓰지 않고 곡괭이로만 팠어요." 감시초소에 부엌까지 갖춘 이 섬에서 가장 큰 진지입니다. 그런데, 이 진지를 만든 사람들은 바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이었습니다. 녹취 요나하 히로토시 : "조선인의 일은 굉장히 많았어요. 항구 화물선의 짐을 올리고 내리는 작업, 그리고 주로 진지 구축 작업입니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위험한 노역에 내몰렸습니다. 인터뷰 나가하마 유키오(미야코 주민) : "1945년에는 일본군 2,300명이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대부분 굶어죽었거나 말라리아입니다. 총에 맞아 죽은 건 적어요. 그런 상황이라면 조선인들은 그 이하의 생활을 했을 겁니다." 이곳에 동원된 조선인이 몇 명이었는지, 또 얼마나 희생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곳 미야코 주민들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제동원됐던 조선인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요. 2차 대전 말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이곳 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 강제 동원의 흔적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이 이뤄졌던 시설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등재를 추진하는 곳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등재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지 취재했습니다.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일찌감치 서구와 무역을 시작했던 항구도시 나가사키. 녹취 "출항하게 되면 2시 40분에 다카시마에 입항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배로 40분을 가면 섬 전체가 탄광이었던 하시마, 이른바 '군함도'가 나옵니다. 군함의 모습을 닮아 이름 붙여진 작은 섬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견학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안내원의 설명이 시작됩니다. 녹취 스기모토 히로시(군함도 해설사)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입니다. 건립된 것은 1916년이니까, 거의 100년 전입니다." 지금은 건물 뼈대만 덩그러니 남아 음산한 기운마저 감도는 무인도지만 100년 전, 군함도는 그야말로 최첨단 도시였습니다. 섬은 대기업 미쓰비시의 소유였고, 아파트는 물론, 학교와 어린이집, 영화관과 수영장까지 지어졌습니다. 녹취 스기모토 히로시 : "당시 도쿄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었습니다. 그 도쿄의 9배가 넘는 인구밀도가 이 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석탄 산업의 최전성기였던 1945년, 축구장 두 개 면적의 이 섬엔 무려 5300명이 거주합니다. 녹취 스기모토 히로시 : "당시 이곳엔 사람이 살고, 소리가 나고, 생기가 있고, 일본의 미래라고 불리던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명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섬을 안내하는 이들과 관관객들, 어느 누구도 이 섬이 '지옥섬'이라고 불린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습니다. 88살 최장섭 할아버지. 최 할아버지는 14살이었던 194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