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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변란사 #한일병합조약 #경술국치 #식민지 #홍복현 #송변준 #이완용 #이용구 #합방청원서 #윤덕영 #민병석 #고영희 #박제순 #조중응 #이병무 #조민희 #신문지법 #이범진 #홍범식 #황현 #신민회 #장태수 #이재윤 #송도순 #정동식 #김석진 #이만도 #안창호 #거국가 #김구 한일병합조약 또는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일본 제국과 친일파 사이에 이루어진 합병조약으로 한일합방조약이라고도 불립니다. 친일파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불법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 양도하고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고, 정미7조약으로 군대 해산을 당하고, 기유각서로 사법권과 감옥사무까지 잃은 대한제국은 결국 멸망 했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병합조약 직후 황현, 한규설, 이상설 등 일부 지식인과 관료층은 이를 일방적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늑약으로 보고 극렬한 반대의사를 보였고, 한일 병합 직후 14만 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창덕궁 대조전에 있는 흥복헌에서 한일 병합 조약을 찬성하는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는데 옛 건물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 건물을 1920년 중건한 것입니다. 일본 제국은 병탄의 방침을 1909년 7월 6일 내각회의에서 이미 확정해 놓고 있던 상태로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제적 명분을 얻는 일만 남겨두었습니다. 일본 제국 정부는 일진회 고문 스기야마 시게마루에게 ‘병합청원’의 시나리오를 준비시키고 있었는데 이에 앞서 송병준은 1909년 2월 일본 제국으로 건너가 매국흥정을 벌였습니다. 여러번 이토 히로부미에게 ‘합병’을 역설한바 있었으나 일본측의 병탄 계획 때문에 늦어지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가쓰라 다로 총리 등 일본 제국의 조야 정객들을 상대로 ‘합병’을 흥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