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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전쟁나당연합군 #백제멸망 #윤명철고대사KoreanHistory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660년 여름, 소정방 등이 지휘하는 13만의 병력을 태운 당나라의 대선단은 산동반도의 성산을 출발하여 황해중부 횡단항로를 은밀하게 건너갔다. 『삼국유사』에는 1900척의 군선이 참가했다고 기록하였다. 이 대선단은 신라의 태자인 金法敏이 수군을 태운 군선 100척으로 대기하던 德物島(현재의 덕적도)에서 합류하였다. 덕물도는 신라가 당항진을 설치한 남양반도의 바깥 바다에 위치해 있다. 이 곳에서는 남양만은 물론이거니와 당진 등 충남해안에 상륙하고 금강하구로 진입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도 상륙하거나 육지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와 크기이다. 신라는 553년부터 이미 100년 가까이 한강의 하류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김법민은 고구려군의 남하를 방어하는 수군을 강화도, 김포, 인천 지역에 배치해두고, 주력군인 100여척 만을 이끌고 당군과 연합작전을 벌이려 합류한 것이다. 신라 수군의 임무는 전투와 상륙작전이외에 당나라 군선의 항진을 도와 복잡한 수로를 안내하고, 초계하는 한편 적합한 상륙지점을 안내해주는 향도역할이었다. 이들 연합함대는 남쪽으로 항진하다 금강인 웅진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갔다. 665년에 성충은 이러한 상황에 처할 것을 예견하고, 적의 수군이 지벌포 연안에 들어오면 나라가 위험해지니 철저한 방어준비를 하라고 간청하였다. 나당군은 백제의 허를 찌르며 불시에 수도공략을 시도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싸운 곳이 ‘百濟守熊津口’라고 명기되어 있다. 수군작전의 특성과 상륙작전의 기본성격으로 보아 나당 연합수군은 당진․홍성․군산 등 해안의 이곳 저곳에 상륙하여 백제의 방어력을 약화시키면서, 혼란을 꾀했을 것이다. 주력군은 배를 타고 금강하구로 진입하여 군산 강경을 지나 부여로 진격해 들어갔다. 금강하구에는 초입부터 섬, 곶 포, 나루와 본류로 흘러드는 지류의 중요한 지점에 강변방어체제가 있었으나, 이러한 체제들은 대군이 침입할 경우에는 방어력이 부족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군은 배를 몰아 서로 잇따라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진격하였고, 수군이 궁성의 바로 앞에서 사비성 상륙작전을 송공시켰다. 물론 도중에서 상륙하여 육지로 공격해온 육군과 협공하였다. 계백장군의 오천명 결사대가 황산벌을 피로 물들이면서 사비성은 700년의 역사를 함께 무너졌다. 백제는 육전이 아니라 기동성과 잠행성, 급습성을 특성으로 한 해군의 원거리 상륙작전에 일거의 타격을 받고 불과 3일만에 무너졌다. 이같은 원거리 해상이동과 대규모의 상륙작전은 새로운 양상으로 기존의 전쟁방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해양전은 전쟁의 승패뿐 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였다. 이렇게 해서 동아지중해 국제대전의 완결편인 소위 삼국통일전쟁은 처음부터 격렬하게, 그리고 빠른 결과를 내었다. 참고서적 : 고구려해양사, 한국해양사, 한민족의 해양활동이야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