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3.1운동 100주년 기획 - 군자금 모금 운동을 이끈 제주성내교회 조봉호 전도사와 제주교회들(CTS, CTS뉴스, 기독교방송, 기독뉴스, 기독교뉴스, 교계뉴스)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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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이후 중국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독립군을 조직하며 활동 자금을 국내에 요청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요청에 부응해 제주에서도 군자금 모금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독립운동을 이끈 조봉호 전도사와 제주교회의 이야기를 박지양 기자가 소개해 드립니다. 1919년 전국적인 3.1만세 운동 이후 4월 13일,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임시정부는 무장독립운동 후원을 위한 독립희생회를 조직합니다. 독립희생회 연락원 김창규는 그해 5월, 제주성내교회를 담임하던 김창국 목사와 조봉호 전도사를 찾아와 제주에서도 독립을 위한 군자금을 모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INT- 강연홍 목사 / 제주성내교회 조봉호 전도사와 제주성내교회 교인이었던 청년 최정식은 제주 법원의 등사기를 이용, 임시정부 선포문과 해외통신문 등 3종의 문서를 50매씩 인쇄해 제주전역에 배포 했습니다. 문서배포를 통한 모금 운동은 제주성내교회 김창국 목사와 모슬포교회 윤식명 목사, 정의교회 임정찬 목사가 자신의 교회 소재지를 중심으로 제주를 3지역으로 나눠 맡아 당시 12개 남짓이었던 교회 조직망을 통해 군자금을 모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INT- 손재운 목사 / 모슬포교회 교인과 도민 4,450여 명이 모은 군자금 1만원. 당시 쌀 한가마니가 4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큰 금액이었던 이 군자금을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하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해 7월,모금운동의 전 과정이 발각되면서 세 목사를 포함한 관련자 60여명이 일제에 체포당했습니다. 목회자들의 무죄를 적극 주장했던 조봉호 전도사 덕분에 세 목사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조봉호 전도사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출소를 열흘 앞둔 1920년 4월 28일에 37세의 나이로 옥사하고 맙니다. 그의 행적을 기려 건국공로대통령표창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고, 제주 사라봉 모충사에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가 건립됐습니다. 군자금 모금 사건이후 제주의 교회들은 일제의 감시와 핍박을 받는 대상이 됐지만, 오히려 제주사회에 교회가 어떤 곳인지 새롭게 알리고 존경과 신뢰를 얻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INT- 강연홍 목사 / 제주성내교회 CTS뉴스 박지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