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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4차 출정을 앞두고 있었다 (8월24일~9월2일 음력)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는 일찍부터 연합하여 합동훈련에 들어가는 등 뭔가 큰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라도가 육지를 잘 막아주고 있으니 우리는 이번에 대 함대를 이끌고 나가 왜적에게 치명타를 날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어디를 치려 하십니까?" "왜놈들의 본진... 부산입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은 이억기의 전라우수군과 8월 1일부터 (8월) 23일(음력)까지 연합훈련을 실시하였다. 일본군의 본진 부산을 치기 위한 대대적인 준비였다. 지금까지 연전연승에 빡센 훈련까지... 조선수군의 전투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였다. 이순신이 부산을 치기로 마음먹은 배경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조선육군이 웅치, 이치, 금산 등에서 왜적을 저지해 준 것에 있다. 만약 전투에서 패하여 전라도가 점령당했다면 이순신은 고립되어 함부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라도 육지방어를 믿을 수 있었다. 이순신의 자신감은 여기서부터 출발되었다. 둘째 경상 우도 순찰사 김수의 다음과 같은 요청이 있었다. "왜적들이 낮에는 숨고 밤에는 행군하여 양산, 김해 등지로 잇달아 내려오는데 물자를 가득 실은 것으로 보아 분명 대대적인 철수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장군께서 적의 퇴로를 막아 주십시오!" 실제로 8월 초순 일본군의 물자가 부산으로 대거 운반되었다. 거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력부대 8,000여 명이 함선 470척을 타고 해안 요충지 곳곳에 배치되었다. 물자가 부산으로 이동하고 많은 배가 해안가에 배치된다는 것은 충분히 대규모 철수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삿짐 꾸리느라 정신없을 때 본진을 친다면 일본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셋째 선조의 명령이 있었다. 이순신뿐만 아니라 각도의 의병들과 관군들의 활약으로 일본군은 초반의 기세를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본진을 칠만 하다고 조정에서도 파악되었다. 8월 24일(음력) 드디어 이순신은 이억기와 연합하여 4차 출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