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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습니다.” 사순 제 4주일 가해 / 2026년 3월 15일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원고 보기] 1사무 16,1ㄱㄹㅁㅂ.6-7.10-13ㄴ; 에페 5,8-14; 요한 9,1-41 찬미 예수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한 주가 지난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에 관저 2동 본당에서 모금을 왔었는데, 우리 노은동 교우 여러분들께서 큰 도움 주셔서 감사하다고, 신부님께서 감사 인사를 전해 오셨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부활 성야 미사 때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전례 시간 등을 고려해 다른 날 세례식을 하고 있지만, 본래 성야 미사는 밤을 지새워 동틀 무렵 끝났기에 성야에 세례를 받은 새 신자들은 부활의 새벽과 함께 진정한 새날 빛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사순 제3, 4, 5주일은 예비 신자들이 그간 받았던 교리교육을 총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 주일의 복음은 그리스도교 입문의 핵심 주제인 물과 빛, 그리고 생명을 다룹니다. 지난 주일 ‘물’과 관련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 주에는 빛과 관련된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생명’과 관련된, ‘라자로를 살리신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영적 갈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갈증을 해소해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이 지난주의 주제였습니다. 이번 주 복음은 눈먼 상태에 있던 인류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진리에 눈을 뜨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물과 빛, 생명으로 이어지는 세 주일의 복음은 각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눈먼 사람은 우리 자신, 나아가 모든 인류를 상징합니다. 또한 짧은 복음으로 읽느라 생략되었지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자기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답한 그의 부모는, 진리를 알면서도 담대하게 증언하지 못하고 있는 교우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는 점점 변하는데요, 처음에 그는 “예수라는 사람”(11절)이라고 표현했다가, “그분은 예언자십니다.”(17절)라고 바뀌고, 마지막에는 “주님”(38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먼 이의 고백이 점점 바뀌듯, 우리도 영적인 눈을 떠가면서 마침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은 ‘나는 아직 영적인 눈을 뜨지 못했다’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눈먼 이도 예수님을 고백할 때 항상 자신의 무지함을 먼저 인정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그분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16절)고 말했고, 두 번째로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른다”(25절)고 답했으며, 마지막에는“선생님, 그분이 누구시입니까?”(36절)라고 여쭈었습니다. 이처럼 그가 영적으로 눈을 떠가는 과정에는, 먼저 자신의 무지함에 대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한편, 복음의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고 그로 인하여 그들의 눈은 점점 멀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사실은 인정했지만, 나중에는 그마저도 의심하다가, 마지막에는 진리를 보는 것에 대한 모든 관심사가 사라져 버립니다. 이들이 점점 눈이 멀어 간 이면에는 세 차례나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 교만(16, 24, 29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병원에 갔다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여성 두 분이 뛰어오셔서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닫히자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병원 좀 밝게 해 놓지, 왜 이렇게 캄캄해?” 그러자 다른 분이 당황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야, 너 지금 선글라스 끼고 있어.”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분께 쏠렸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자주 판단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나의 판단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옳을까요? 혹시 우리가 쓰고 있는 어두운 색안경이 그를 그렇게 바라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기름이 머리카락과 모공에 스며들면서, 하느님의 현존이 그의 내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Bergen, 180)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여기서 마음은 그의 생각과, 감성과, 지향을 의미합니다. (Bergen, 179) 하느님은 당신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보십니다.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우리 마음의 눈, 영적인 눈이 뜨이도록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하고 이르십니다. 바리사이들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치료를 해서도 안 되었고, 침을 뱉어서도, 반죽을 해서도, 눈에 무엇을 발라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레네오 성인은 예수님에게서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신” 창세기(2,7)의 하느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많은 교부들은 예수님의 침과 실로암 연못이 세례의 물을 상징하고, 눈에 진흙을 바르신 것이 세례 때 기름을 바르는 예식을 상징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8세기 영국에 존 뉴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를 오가며 흑인 노예들을 실어 나르는 노예 무역선의 선장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아버지와 개신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존은 하느님을 부정했고, 노예들을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취급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배는 거대한 폭풍우를 만납니다. 배에 물이 차오르고 침몰하기 직전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난생처음 마음에서 우러난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놀랍게도 배는 기적적으로 난파를 면했고,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후에 그는 회심했고 성공회 사제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노예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고, 1807년 죽기 몇 달 전, 마침내 영국이 세계 최초로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생전에 직접 쓴 비문이 그의 묘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존 뉴턴. 성직자. 한때 무신론자이자 방탕한 자였으며 아프리카 노예들의 종이었으나, 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자비로 지켜지고 회복되고 용서받았으며, 오랫동안 자신이 파괴하려고 애썼던 그 신앙이 전파되도록 임명되었다.” 그는 과거를 깊이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허락하신 하느님 은총을 찬미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그 시의 제목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입니다. “놀라운 은총이여, … 나같이 비참한 사람을 구원하셨네. 저를 잃으셨지만, 찾으셨고, 제 눈은 멀었지만 이제 보게 되었습니다. … 수많은 위험과 고난과 유혹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를 지금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신 것은 당신 은총이었고 그 은총이 저를 집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는 이 시에서 오늘 복음에서 눈먼 이가 했던 고백,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Was blind but now I see.” 이 말씀은 오늘 제2독서에도 나옵니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우리도 놀라우신 주님의 은총으로 눈을 떴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침과 같은 세례의 물로 우리를 씻으시어 새날 빛을 보게 해 주셨고, 세례 때 우리 이마에 기름을 발라 주심으로써 당신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물게 해 주셨습니다. 마음으로 볼 때 비로소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수없이 나를 용서해 주셨는지를.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위험에서 나를 구해주셨는지를. 마음으로 볼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지금 내 앞에 계시다는 것을. 이 미사 중에 당신 자신을 전부 내어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마음으로 볼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섭리하시며 나를 지금 이 자리까지 인도해주신 분이 바로 이분이시라는 사실을. 존 뉴턴의 시를 가사로 하여 만든 노래를 함께 들어보면서 오늘 복음 말씀을 되뇌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