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12.12 이후가 더 치밀했다? 정말 세심하게 입법·사법·행정 하나씩 찬탈한 전두환, 그의 'K 공작계획'과 그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영상기록들 | KBS 210521 방송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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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자,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고 그 책임자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임명된다. 이때부터 TV를 통해 국민들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는, 사실은 보안사령부에서 기록한 ‘보안뉴스’라는 영상기록물을 통해 권력의 핵심을 향해 차곡차곡 순서를 밟아가는 자신의 행적을 꼼꼼히 담아내고 있었다. 실권없는 대통령 최규하를 패싱하고, 쿠데타를 통해 비상계엄 하의 최고 권력자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되며 실권을 쥐는 동안, 전두환은 언론 회유를 통한 자신의 이미지 순화와 군부 권력유지의 공작을 펼친다. 1980년 3월말에 보안사 언론대책반을 통해 마련한 ‘K 공작계획’이라는 비밀문서에는 전두환이 언론사 중진들을 회유한 뒤, 광주항쟁 기간 중에는 보도 통제와 가짜 뉴스 생산, 언론사 간부를 광주에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실질적 공작활동으로 실행하는 치밀한 설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사직격》은 그 동안 일부만 알려졌던 ‘보안뉴스’와 ‘K 공작계획’을 세세하고 깊이 있게 취재해 비상계엄 하에서 권력 찬탈을 시도해 장장 240여일 만에 쿠데타를 성공시킨 전두환의 권력일기를 낱낱이 공개한다. ■ 10.26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전두환의 권력일기 '보안뉴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시해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조직된 합동수사본부는 다음날 새벽 2시부터 궁정동 안가를 수사한다. 이때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자신의 부대에서 파견된 병사의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수사현장의 상황을 영상기록으로 남긴다. 이후 1, 2차 중간발표 기자회견과 12.12 쿠데타 직후 신군부의 기념사진 촬영 현장과 축하파티, 1980년 보안사령부 시무식과 부대원 위로파티, 전두환의 대장진급식과 축하파티 등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행사와 활동을 기록해, 마치 최고 권력에 한발짝씩 다가가는 자신의 성장일기를 기록하듯 모아둔 영상자료가 있다. 이것이 이른바 ‘보안뉴스’다. “불행하게도 지난 12월 12일 정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계획없는 병력출동으로 큰 충격을 줬다는 점은 사령관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보안뉴스-79년 송년파티'편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발언 중 ■ 일본 외무성이 만든 정보문서 '전두환 파일' 한국의 정치 흐름이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던 일본 외무성에서는 10.26 직후부터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행적을 면밀히 관찰해 왔다.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 한국의 기자나 거물 정치인들, 그리고 군부의 실력자들을 직접 만나서 얻은 정보를 기록한 문서가 40년 만에 비밀 해제돼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이번에 《시사직격》과 협업한 《뉴스타파》 전문위원들은 이 문서를 입수하고 번역하는데 장장 1년 6개월의 노력을 기울여 그 내용을 파악하며, 이 문서의 이름을 ‘전두환 파일’로 명명했다. 여기에는 10.26 직후의 권력 공백 기간 이틀 만에 빠르게 실권을 장악하는 것을 파악하고, 향후 쿠데타를 예견하는 듯한 정보까지 일본 외무성에 세세하고 보고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바야흐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위기를 구한 공직자로 군대 내의 1인자로 지위를 확립하였다. 한편 행동이 불분명한 것을 보인 정승화는 단독 행동이 허락되지 않아 실권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1979년 10월 31일 12시 30분 한국 발 ■ 합동수사본부 수사 담당자 이건개와 백동림의 인터뷰 전두환이 처음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보안사령관의 오른쪽에는 합동수사본부 검사 이건개가, 그리고 왼쪽에는 수사국장 백동림이 동석하고 있었다. 《시사직격》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의해 수사 담당자로 발탁되는 과정부터 김재규 단독범행을 보고하게 된 이유, 그리고 12.12 쿠데타 직전 수사팀에서 밀려나는 과정까지 인터뷰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전두환이 군대 내부에서 권력을 거머쥐면서 실권자로 급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그의 권력 찬탈 의지가 10.26 직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12.12 나기 일주일 전부터 난 손을 뗀 거예요. 그렇게 제가 돌아오는 시기에 모 인사가 일본에서 공부하고 왔을 때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누굴 대통령시키면 좋겠냐 하니까 이 사람이 ‘당신이 하라’고 하니까 그 사람을 주요 포스트로 등용시키면서 ‘Go'한 거야 그때부터.“ 이건개 합동수사본부 검사 “그거는 그 당시부터 생각했어요. 오래된 계획인 거보다도 그 당시 그렇게 생각한 거죠. 정권이라는 게 어떻게 순간적으로 되더라고요, 그렇게.“ 백동림 합동수사본부 수사1국장 ■ 언론사 회유 공작 대외비 문서 'K 공작계획' 12.12 쿠데타 이후 군부 실권자가 된 전두환이 민간 권력까지 찬탈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언론작업이었다. 쿠데타의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순화하고, 군부의 권력을 지속 유지하기 위해 고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작성한 비밀문서의 이름은 'K 공작계획‘.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의 주도로 언론대책반 이상재가 작성한 문서의 제목 중 ’K'는 King, 즉 전두환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마지막 장에는 조선, 동아 등 신문사와 KBS, MBC 등 방송사를 총망라한 언론사 중진 90여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들을 회유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도록 하기위해 각각 10만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등의 꼼꼼한 계획이 포함됐다. 그리고 이 공작은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현장에 KBS 고위 임원을 잠입시켜 현장 상황을 파악해 보고받는 등 실질적인 언론 장악과 공작으로 이어진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로 남아있다. Since 1983, 대한민국 최초의 탐사 프로그램 상식의 눈으로 진실을 추적한다 매주 금요일 밤 10시 KBS1 《추적60분》 ✔ 제보 : 010-4828-0203 / 추적60분 홈페이지 /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 https://program.kbs.co.kr/2tv/culture... ▶카카오톡 채널: http://pf.kakao.com/_fxgiyxj ▶페이스북 : / kbs60min ▶인스타그램 : / kbs60min ▶트위터 : / kbs1548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