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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갈등의 성격 1st Wave 巫俗과 傳來宗敎의 영성으로부터 기독교적 성령론으로의 발돋움의 갈등기 2nd Wave 성령론의 무분별한 은사론의 정립을 위한 갈등기 3rd Wave 성령의 인격적 內住와 인도하심의 신앙을 향한 갈등기 역사신학적인 안목에서 볼 때 위의 표에 나타난 각 시기는 한국교회의 성령론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발전적인 맥(脈)을 형성해 주고 있다. 즉 신학적, 교회적 갈등 양상들과 함께 이에 따르는 하나의 발전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같은 각 시기의 갈등과 이에 대처하는 신학적인 비평작업을 통해, 결국 보다 더 복음적이고도 성숙한 성령론의 시대로 발전해 가는 낙관적인 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본 논고(論考)의 요지이다. 위의 표의 내용은 한국교회사 속에 도도히 흘러 내려와 우리에게 묵시적(黙示的)인 언어로 그 향방을 가리켜 주고 있는 하나의 역사신학적(歷史神學的)인 조명이다. 첫 시대에 대한 교회의 비평작업을 통해 교회는 타종교로부터 기독교의 성령론을 구분지어냈다. 그리고 제 2의 성령운동 시대에 교회는 성령의 바람직한 은사관, 즉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하였다. 이제 교회는 도래하는 제 3의 성령운동에 대처한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온갖 범신론과 New Age 그리고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의 혼탁한 혼합주의로부터 성령의 인격적 인도하심의 영역을 구별해 내야 할 때다. 필자는 이 3rd Wave 자체로 인해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고 부흥의 새로운 전기를 얻게 된다고 보기보다는, 이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비평과 적용으로서 한국교회에 큰 유익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 운동이 바람직한 한국교회사에 공헌할 운동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학적인 여과(濾過)와 분별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믿는다. 제 1, 제 2기의 성령운동이 그러했듯이 제 3기의 운동에도 분명히 극단적인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곧 시급하게 이 운동에 신학적인 비판과 교정작업 등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의 성과를 기하기 위해서는 이 운동을 조명하되 어느 특정 교단이나 신학 노선에 의한 독자적인 평가를 가능한 한 삼갈 것이며, 보다 포용적인 형태의 연구작업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 까닭은 이 운동으로 인한 또 다른 분파(分派) 형성이라든지 무분별한 이단론(異端論)의 난무로 인해 한국교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없도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가지 제안으로서 한국 내의 여러 복음주의적 신학교의 학문적으로 권위있는 교수들에게 이에 대한 평가와 진단을 의뢰하여, 여기에서 나오는 일치된 결론을 따라 성령운동의 가닥을 잡아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가지 숙고할 점은 평가의 방법에 대해서이다. 교회 내의 신흥운동이나 분파집단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현재까지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해 온 방법은 공식화된 어떤 신학 체계나 교리 노선에 비추어 이를 분별해 내는 조직신학적(組織神學的)인 접근방법이다. 그러나 조직신학적인 접근방법에 의한 비평작업은 그 뚜렷한 비교능력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비평자의 주관적인 신학적 입장이나 특정 교단의 교리 노선에 치우쳐 조명하게 될 우려가 많다고 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좀더 보편적이고도 완숙한 비평의 성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조직신학적 검증의 폭넓은 시도와 함께, 역사신학적(歷史神學的)인 조명에 의한 통찰이 덧붙혀질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조직신학적 비평과 역사신학적 비평의 상호관련성에 대해 배본철, 역사신학(서울: 문서선교 성지원, 1994), 上卷, 20을 참조하라. 필자가 제 6장에서 제시한 급진 성령론에 대한 분별법(分別法)은 하나의 역사신학적 조명으로서, 이같은 분별법을 교리적인 비평과 함께 활용하게 될 때, 현재 난무하는 이단론의 홍수 속에서 사이비 집단을 가려내어 이들의 회피할 수 없는 역사적인 오류(誤謬)를 판명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혹된 길에 들어서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적지 않은 통찰력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이 제 3의 성령운동에 대한 신학적 연구작업을 통하여 교회는 어떤 성령론의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교회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 즉 신자 안에 실제적으로 내주(內住)하면서 친밀히 신자의 삶과 인격을 이끄시는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존 윔버의 ‘능력시리즈’를 번역하여 한국 교계에 빈야드운동을 포함한 3rd Wave의 열기를 조성한 이 재범 박사는, “빈야드운동은 이제 성령의 능력과 인격의 균형을 이루는 사역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령의 인격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령의 인격 없이 능력만을 강조하면 빈야드운동도 일시적인 운동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재범, “새 물결의 파고 ‘빈야드운동’, 어떤 것인가”, 목회와 신학 (1995.6), 63. 라고 하면서, 현재 빈야드운동이 너무 ‘성령의 나타남’에만 치우치는 현상을 우려하였다. 빈야드운동이 만일 복음적인 신학의 토대 위에서 온건(穩健)하게 발전해 나간다면 이같은 성숙한 성령론의 시대를 여는 데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3rd Wave로서의 빈야드운동이 비록 겉으로는 능력과 예언 그리고 기사와 이적을 동반한 ‘성령의 나타남’을 강조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은 ‘성령의 주(主)되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성령의 주되심’이란 그리스도인의 삶과 복음전파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위격(位格)으로 각 신자 안에서 인격적으로 인도하시는 사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빈야드운동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는 ‘성령의 주되심’이 ‘성령의 나타남’이나 능력전도의 면에 치우친 반면, ‘성령의 열매’와 성결 그리고 신자 전 생애의 모든 영역에 직결된다고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지 못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주되심’으로서의 성령론의 완성을 기함에 있어서는 제 4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결론’(聖潔論) 연구의 많은 자료들이 유용하다. 이같은 성결론을 바탕으로 ‘성령의 주되심’의 복음적인 성령론 체계를 정립하게 될 때, 성령의 역할론적(役割論的)인 통합(統合)’을 얻어낼 수 있게 된다. 본 논고(論考)는 현재 발흥하고 있는 3rd Wave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비평의 과제를 남겨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에 대한 신학적 비평이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그것은 우리 모두의 짐이다. 단 본인이 이 글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역사를 움직이시는 주인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현재 성령운동의 흐름에 대처하는 신학적 비평의 결과를 통해 더욱 복음적인 성령론의 발전을 이루어, 한국교회 영성(靈性)의 성숙을 위해 일하실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역사적 인식을 함께 하여 이 소중한 기회를 선용(善用)함을 통해, 21세기 한국교회의 일치와 세계선교의 완수를 이루는 이 양면적(兩面的)인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게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