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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 필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부기부기 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허무한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다 새도록 춤을 춥시다 부기부기 부기우기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전쟁의 상처가 점차 사라지던 1950년대 후반, 슬프고 우울한 멜로디보다는 밝고 희망적인 노래들이 많이 발표되었습니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국민들에게 1959년 발표된 '기타부기'(발표 당시 제목은 '키타부기')는 큰 위로가 된 노래이지요. 광복 후 미군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서양의 리듬이 유입되고 우리 대중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블루스(Blues)에서 파생된 밝고 경쾌한 리듬의 부기우기(Boogie Woogie)는 193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쟁 이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 대부분 피아노로 연주되는 부기우기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느낌의 베이스 선율이 특징인데 밝고 신나는 리듬 덕분에 댄스의 장르로도 발전하게 됩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부족 언어에서 파생했다고 하는 부기우기라는 단어는 '두드린다', 혹은 '춤을 춘다', '이륙한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중음악에서 부기우기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것은 1928년 Pine Top Smith의 노래 'Pine Top's Boogie Woogie'가 최초였다고 하네요. 우리 나라에서 발표된 부기우기 곡들 중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가 바로 '기타부기'인데요. 백야성 선배님의 '마도로스 부기'라든지 신카나리아 선배님의 '승리부기', 유성희 선배님의 '양산도 부기'와 같은 부기우기 곡들 중에서도 가장 대중의 사랑을 받은 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휴전 이후 설립된 신신레코드사는 1957년 무렵 신세기축음기주식회사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많은 음반을 출시했는데 이례적인 것은 1959년 발표된 '키타부기' 앨범은 신신레코드로 라벨이 인쇄되어 판매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분들은 희귀아이템을 소장하고 계신 것이 되겠네요. 본명이 윤승경(尹昇京)인 윤일로 선배님은 1935년 평양 출생으로, 데뷔 이후 킹스타레코드의 전속가수 시절에 작곡가 나화랑 선생님과 가수 백년설 선생님이 지어준 윤일로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일로(一路)라는 한자에서 보듯 한 길로만 가라는 뜻이었지요. 해방 이후 서울로 왔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인천으로 가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노래만큼이나 축구를 워낙 좋아했던 탓에 직접 축구팀을 조직하고 전국대회 우승을 여러차례 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각종 콩쿠르에서 상을 휩쓸며 노래 신동이라 불리우게 되지요.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해군 군악대에 지원하면서부터라고 하는데요. 클라리넷을 주특기로 하면서도 틈틈이 콩쿠르에 참가했고 당대의 유명 작곡, 작사가 선생님들과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백영호, 손석우, 나화랑 선생님과 같은 거물들에게 러브콜을 받고 1955년 전역 후에 실제로 나화랑 선생님을 만나 테스트를 받게 되지요. 그렇게 윤일로 선배님은 킹스타레코드의 전속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킹스타레코드에서 이렇다 할 히트곡을 발표하지 못하고 2년 뒤 신신레코드로 소속을 옮긴 윤일로 선배님은 보다 쉽고 친숙한 노래들을 발표하기 시작하는데, 작곡가 이재현, 김부해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가수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기타부기', '항구의 사랑', '추억의 영도다리'등 윤일로라는 이름을 스타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했습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이때부터는 감추고 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게 되는데요. 작사, 작곡은 물론이고 MC까지 맡는 등 일로(一路)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펼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1964년 현인 선배님과 함께 출연한 무대에서 '신라의 달밤'을 성대모사해 부르면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답니다. 잘생긴 얼굴과 짙은 눈썹이 트레이드 마크인 윤일로 선배님은 지금까지도 멋스러운 중절모를 착용하고 노래를 하는 모습때문에 '로맨스 그레이'라는 별명을 갖고 계시지요. 올해 85세가 되신 선배님은 노환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월은 야속하지만 선배님의 노래는 아직도 젊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노래는 듣는 우리를 그 시절의 시간과 공간으로 데려다 주는 힘이 있지요. 밝고 희망적인 노래로 많은 국민들을 위로했던 윤일로 선배님이 더욱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 계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타부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