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조선공주록]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소리까지 듣는 세종의 차녀 정의공주(貞懿公主)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조선공주록 #훈민정음 #세종 #정의공주 #가림토문자 #안맹담 #계유정난 #이주현 #숙원_이씨 #정안옹주 #상침_송씨 #정현옹주 정의공주(貞懿公主)는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8남 2녀 중 셋째 자녀이자 적차녀인데 위로는 언니 정소공주와 오빠 문종이 있고, 아래로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을 비롯하여 7명의 남동생이 있습니다. 1424년 첫째인 정소공주가 겨우 13살 때 병으로 죽어, 이후 26년간 실질적으로 세종의 장녀이자 유일한 적녀(嫡女)였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정의공주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역산, 즉 수학과 천문학을 할 줄 알아 관심사가 맞는 아버지 세종대왕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의공주의 시가(媤家)인 죽산 안씨 가문의 기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도 오빠 문종, 두 남동생 수양대군, 안평대군과 함께 많이 도왔다고 합니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 드디어 (정의)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 하지만 이 기록을 그대로 믿기엔 문제가 있는데 출처가 1976년에 편찬 및 출판된 집안 족보며, 숱한 행장처럼 조상을 미화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노비 수백을 하사했다는데, 개국공신에게도 노비는 30여 구 하사하였고, 이후 공신에게도 몇명에서 십여명 정도 하사한 사례가 대부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