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ubc울산방송] 161002 처용은 누구? "관용의 상징"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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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태화강대공원에서는 울산의 대표축제인 처용문화제가 한창입니다. 반세기동안 이어져온 이 축제의 주인공인 처용은 누구이고, 또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궁금해하시는 분들 많으실텐데요 스토리텔링 뉴스에서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김규태 기자입니다.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처용입니다. 삼국유사의 처용설화를 소재로 1987년 초연 이후 26년 만인 지난 2013년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부패한 신라를 구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하늘의 아들 처용이 지상의 여인 가실을 사랑하게 되면서 갈등과 번민에 빠진단 내용으로, 현대적인 감각이 입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속에 전해오는 본래 처용은 어떤 인물일까?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처용은 동해 용의 일곱 아들 중 하나로, 왕이 당시 수도인 경주로 데려가 미모의 여인과 결혼도 시키고 관직도 줬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때문에 울산지방에 있었던 호족의 아들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헌강왕 때는 풍악과 노랫소리가 길거리에 끊이지 않았고, 모든 집에서 나무 대신 숯으로 밥을 지을 정도로 사치와 풍요가 극에 달해 지방호족들의 불만이 높았습니다. 이같은 시대적 배경으로 볼때 지방호족의 자제인 처용을 경주로 불러들여 높은 관직과 미모의 아내로 회유해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겁니다. 귀신을 쫓는 용한 무당이어서, 헌강왕이 곁에 두고 전염병이나 액운을 퇴치하는데 활용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처용이 자신의 부인을 범한 역신에게 화를 내기보다 노래와춤으로 달래고, 역신도 이런 처용의 관용에 무릎을 꿇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역신이 자기 부인을 범했을 때 화를 내는 게 아니고 노래와 음악, 무용으로서 역신을 감동하게 만들어서 물리친 설화가 담겨 있습니다." 이후 나쁜 기운과 전염병을 막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문에 붙이고 궁중에서 처용무를 췄던 것도 바로 이 때문. 실제 삼국사기에 신라의 역병 관련 기사가 18번이나 등장하고 선덕왕과 문성왕도 질병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역병이 가장 많이 발생한 경문왕 다음인 헌강왕 때 처용이 등장한 것도 무당설의 배경이 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서역인이란 설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신라 원성왕의 무덤인 경주 괘릉 앞에 있는 서역 무인석상. 높은 코와 깊은 눈, 한눈에 봐도 우리나라 사람과는 달리 생겼는데, 악학궤범에 나온 처용의 모습과 상당히 닮았습니다. "눈이 깊고 코가 크고 턱이 주걱턱입니다. 처용은 은근하게 웃고 있어요. 관용을 담은 미소를 담고 있어요." 여기에다 페르시아 서사시인 쿠쉬나메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멸망한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로 망명해 신라 공주와 결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전체 내용의 절반 가까이가 신라에 관한 얘깁니다. 특히 헌강왕이 처용을 경주로 데려가 높은 벼슬을 주고 신라 여인과 결혼하게 하는 내용이 처용설화와 매우 흡사합니다. “신라사회에 기여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신라 부인을 얻어서 정착해서 한국문화와 외래문화가 자연스럽게 접목하는 구도를 갖고 있다. 설화구조가 굉장히 닮아있다" 처용이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천 년이 넘도록 악귀를 물리치는 수호신, 관용의 상징으로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유비씨 뉴스 김규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