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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단장(斷腸)'의 슬픔이란 어느 정도의 고통일까요?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노래 속 가사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를 깊은 슬픔에 눈물짓게 만듭니다. 미아리 고개는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에서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명칭입니다. 병자호란 때 되놈(胡人)들이 이 고개를 통해 우리나라를 침략했다고 해서 되너미고개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 후 이 지역에 미아사라는 절이 있어서 미아동의 동명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미아리 고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 당시 북한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신작로였던 미아리 고개, 좁디 좁은 그 길을 통해 북한군은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하게 됩니다.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어 서울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미처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서울시민들은 공산치하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미아리 근방에 살고 있던 작사가 반야월 선생님은 단신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약 3개월 후인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9월 28일에는 서울이 다시 수복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반야월 선생님은 5살의 어린 딸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아리 고개 근방을 찾았지만 전쟁의 화마로 땅이 변하고 쓸려 아이의 무덤 마저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어떤 슬픔이 이보다 지독할까요. 반야월 선생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가사를 써내려갔고 이 노래는 6.25전쟁의 아픔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노래로 남게 되었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에 등장하는 '흥남부두', '국제시장', '영도다리', 또 '이별의 부산정거장'에 등장하는 부산 정거장과 판자집의 풍경도 전쟁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서울을 배경으로 전쟁 초기 가장 긴박했던 순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그 의미가 큽니다. 1983년 6월에는 KBS를 통해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라는 타이틀로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무려 138일에 걸쳐 453시간 45분이라는 최장시간 생방송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요. 이 때 KBS에서 6.25전쟁과 관련한 노래 선호도를 설문조사했을 때 1위를 차지했던 곡이 바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입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탈환했을 때, 북한군은 미아리 고개를 통해 후퇴하며 수많은 애국지사와 인사들을 북으로 끌고 갔습니다. 노래의 가사를 들여다 보면 그 시절의 모습이 머리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을 하오 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이해연 선생님의 노래를 들어보면 1절과 2절 사이 간주부분에 대사가 녹음되어 있습니다.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세요 어린 용구는 오늘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에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 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오세요 네 여보 여보" 어떤 말로 이 비통함을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북으로 끌려간 가장을 그리워하는 슬픔도 잠시,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과 함께 남겨진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아야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한이 느껴집니다. 반야월 선생님의 인생과 노래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참 슬픔과 곡절이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40년에는 '불효자는 웁니다'를 녹음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을 때 고국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들어야했고, 6.25 전쟁 때에는 '단장'의 슬픔을 참아가며 이 노래를 만드신 거지요. 2012년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신 반야월 선생님이 오늘따라 무척 보고 싶습니다. 그 곳에서는 모진 슬픔을 뒤로 하고 행복한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네요. 잠시나마 이 노래가 전쟁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어야 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들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