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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믿음의 기도, 겸손의 기도 기도는 성도의 생명을 살리는 호흡이라고 합니다. 매순간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하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주의 뜻을 우리의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바쁜 여정 중에서도 끊임없이 아버지와 교통하는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고, 특히 새벽 미명에 산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는 습관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오늘 주님은 주의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 가지의 기도의 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포기하지 않는 강청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통회하고 애통하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먼저 주님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줄 것을 강청하는 비유를 드십니다. 이 재판관은 불의한 재판관으로, 세상적인 뇌물을 사랑하는 속물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구약사회에서 재판관은 모세 시대에 백성을 지도할 능력있는 사람들을 세우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을 세워 천부장, 백부장 오십, 십 부장들을 세울 때 그들로 백성을 재판하게 했습니다. 백성의 밑바닥에서부터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서 각각 상급심으로 올라가듯이 진행되게 하고, 어려운 일들은 모세가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의 행정조직이 사법조직을 겸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시에는 군대조직으로, 백성의 지도자들은 군대 우두머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후 사사들이 그 일을 맡았고, 여호사밧 왕은 특히 사법 조직을 정비하며 유다 견고한 성읍마다 재판관을 세우고, 그들이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고, 불의도, 치우침도 없고, 뇌물도 받지 않는 오직 하나님만 위하여 판결하게 했습니다. 또한 레위사람들과 제사장들로 예루살렘에 중앙 재판정을 두어 판결에 잘못이 없도록 했습니다. 재판관은 오직 진실과 성심을 다하고,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특히나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정의를 그 본분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하는 재판관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자였기에 과부의 원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과부는 재판관의 불의함과 무시에도 간구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불의한 재판관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이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지만 이 여인의 간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자신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게 할 것이라며 마침내 들어주었습니다. 주님은 하물며 불의한 자라도 이와같을진대 하늘 아버지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한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강청기도의 위력입니다. 하나님은 연초부터 연말까지 자기 백성에게 얼굴을 향햐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잘못된 탐욕이 아니라면, 주님은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항상, 늘 기도에 힘쓰는 저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주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면서 아무리 일 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도덕적으로 어떤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은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자신의 죄를 바라보며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십니다. 세리는 그저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며 자신은 죄인이라고 애통해합니다. 그것 뿐입니다. 그 어떤 기도의 내용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응답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 말고, 우리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애통하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묵묵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마음속 깊은 곳의 한숨과 눈물을 보시고 아십니다. 그렇다면 그저 '주여,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떼를 쓰듯이 강청하며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기도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애통하고 그저 주님 앞에 엎드리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죄악됨을 보고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세세한 기도의 제목을 아뢰는 것도 중요하고, 애통과 회개의 기도도 중요합니다. 다시 주님 앞에 묵묵히 엎드리며 주와 함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복된 저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는 성도가 살아갈 힘이 됩니다. 그 은혜안에서 참 평강 누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15-30) 누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가? 기도는 아버지 앞에 서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선 우리는 자신의 악함을 볼 수밖에 없고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온전하다고 믿는 바리새인은 자신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자랑스레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기도를 할 뿐이요, 참된 하나님과 교제가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자는 엎드려 죄인임을 고백하며 가슴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것이 성도의 기도입니다. 이후 사람들이 주님께 아이들을 데려와 축복 기도를 받기 원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 사회가 어린아이에 대해서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숫자를 셀 때에도 성인 남자만을 세고 여자와 아이들을 세지 않았던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만큼 어린이나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온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주님을 따라다니며 3년의 세월을 보낸 제자들로서는 이제는 주님의 마음을 알 만도 한데, 여전히 관습과 전통에 매여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님은 제자들을 꾸짖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들 것이라는 파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같이 오직 엄마 품을 의지하고 믿고 따르는 것처럼,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고 의탁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당신을 '선한 선생'이라고 부르며,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하는 관리에게 선한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라며, 십계명의 말씀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이 관리는 자신의 선함을 은연 중에 내세며 주님을 선한 선생으로 불렀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탁월한 랍비나 선하다고 특징지워지는 분으로 불릴 수 없습니다. 주님은 창조주요 구속주가 되시는 성자 하나님이시며, 장차 심판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일단 부자 관원의 호칭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자 관원이 은근슬쩍 자신의 선함과 의로움을 자랑하고픈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 속의 공로심을 경계하시며, 그가 당신을 부르는 호칭에 대해 바로 반박하셨습니다. 그리고 선한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정리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참된 선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속성입니다. 인간의 그 어떠함도 참 선에 이를 수 없습니다. 또한 주님은 당시 사람들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믿는대로 십계명 중에서 인간 상호간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관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것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돌해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부자 관원은 율법에 신실한 자였던 것 같습니다. 마가는 이 사람의 대답에 주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라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가 과연 주의 십계명 중 인간 상호간의 말씀들을 온전히 지켰다고 담대히 말 할 수 있을까요? 문자적으로 지킨다는 것이 참된 지킴이 될까요? 그렇다면 그는 왜 지금 불안하여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것입니까? 우리의 참됨과 진실함이라고 하는 것들도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영혼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그에게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으니,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늘에게 그에게 보화가 있을 것이며, 그 후에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관리는 근심하며 떠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심히 큰 부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영생을 구하나 실상은 세상을 사랑하고 물질에 노예였습니다. 물질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으로 이해되는 헬라어 '조에'는 하나님의 생명, 혹은 생명의 근원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러하기에 영생을 시간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성도는 이미 영생을 얻은 자들이며, 지금 하나님과 함께 살며, 영원히 그 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들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순종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의 길은 아니지만 주의 제자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말씀들이며, 그 말씀안에 거할 때에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교통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며, 영생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 은혜안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는 저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말성경#매일읽어주는성경#하임정성은 Disclaimer:Please note no copyright infringement is intended, and I do not own nor claim to own any images and music used in this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