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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傳燈寺)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 삼랑성에 위치합니다. 오래된 고성(古城)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삼랑성에는 명칭에서 보듯이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 부우, 부소가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1964년 6월 1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30호 '삼랑성'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7월 28일 '강화 삼랑성'으로 변경 되었으며 산의 이름을 따라 '정족산성' 이라고도 불리웁니다.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대한민국의 보물들이 소장되어 있는 천년 고찰 전등사는 특히 경내에 한 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가 있어 그 의미가 더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공인된 고구려 소수림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전등사는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한국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깊은 곳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도화상이 처음 절을 지었을 때는 전등사가 아닌 진종사(眞宗寺)로 불리웠다고 하네요. 이후 고려시대 때 몽골의 침입으로 1232년 부터 1270년 까지 강화도에 임시 도읍을 정하게 되는데요, 고종 46년(1259년)에 진종사 경내에 가궐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로서 중하게 여겨졌던 진종사는 1266년 크게 중창되었고, 충렬왕 8년(1282년) 왕비였던 정화궁주가 대장경과 함께 옥으로 만든 법등을 진종사에 시주하면서 그때 절 이름이 전등사(傳燈寺)로 바뀌게 됩니다. 전등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등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고려왕실 때는 계속해서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조선 광해군 때인 1605년과 1614년 화재로 건물이 소실된 이후에는 1621년에야 재건되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1678년 숙종 4년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찰로 전등사가 지정되면서 왕실로 부터 보호를 받게되며 숙종 45년(1719년) 부터는 주지승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임명하여 우대하기도 하였습니다. 1726년(영조 2년)에 영조가 전등사를 방문하여 직접 쓴 ‘취향당’ 편액을 내렸다고 하며, 1749년에는 영조가 시주한 목재를 사용해 전등사 중수불사가 이뤄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전등사는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근본 도량이었을 뿐 아니라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에는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이자 근대사의 중심에서 국운을 지켜낸 사찰이었습니다. 더구나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세계 최대의 단일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만들고 지켜내는 데에 일조한 점은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정족산사고] 조선 전기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장소는 총 네 곳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4개의 사고 중 춘추관사고, 충주사고, 성주사고가 불에 타면서 실록들도 모두 소실되었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지역 주민들과 사고 관리인들의 빠른 대처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에 사고를 좀 더 인적이 드물고 보다 안전한 깊은 산속에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는데요, 조선후기의 새로운 사고는 강화도 마니산,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의 외사고와 내사고인 춘추관사고, 이렇게 모두 다섯개의 체제로 운영됩니다. 그 중 묘향산사고는 후금(훗날의 청나라)의 침략 위험이 높아지자 전라도 무주의 적상산사고로 이동 설치되었고, 강화도 마니산사고는 병자호란으로 훼손되고 또 효종 4년(1653년) 화재로 소실되어 1660년 전등사 경내에 정족산사고를 짓고 이전하게 됩니다. 1707년 강화 유수였던 황 흠이 사고를 다시 고쳐 짓고 별관을 지어 '취향당'이라 하였는데, 이곳에는 "조선왕조실록(현 서울대 규장각소장 본)"인 정족산본 1,181책을 보관하고 있었던 '장사각'과 "선원보(璿源譜)"를 비롯한 왕실 문서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이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전등사 스님들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서책들을 토굴로 옮겨 오롯이 지켜내었다고 하는데요, 이 또한 전등사가 역사의 책무를 다한 사찰이었음을 증거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09년 비록 보관중이던 실록이 서울로 이전되면서 전등사가 사고(史庫)로서의 지위는 잃게 되지만, 이후 강화와 개성의 사찰을 관리하는 본산으로 승격되기에 이릅니다. [전등사 무설전(無說殿)] 새롭고도 현대적인 감각을 추구한 전등사의 무설전(無說殿)은 "설법이 없는 큰 집" 이라는 뜻의 이색적인 법당이자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고정관념을 모두 벗어버린 현대불교의 진화를 보여주듯이 그리스 조각처럼 흰빛을 띤 부처님과 프레스코(Fresco)기법의 후불탱화, 그리고 ‘법당 속의 예술 공간’으로 계획된 갤러리 등이 있어 부처님께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황금 빛이 아닌 흰옷을 입고 계시는 것은 눈 높이를 중생들에게 맞춘 따뜻한 배려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림이 있는 법당’이라는 문구가 조금은 낯설지만 통로 겸 복도가 모두 갤러리인 것도 특이한데요, 2012년 문을 연 이 공간은 예술을 귀하게 여기셨던 전등사 조실(祖室) 서운스님(1903~1995년)의 뜻을 따르고자 ‘서운갤러리’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창작에 대한 열정과 실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세계에 도전하는 젊은 시각 예술가들의 많은 참여와 활용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전등사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무설전 #아도화상 #인천여행 #강화여행 #경기도여행 #국내여행 #궁금한데가보자 #산사가들려주는이야기 #koreatour #gyeonggido #ganghwado #buddhisttemple #JeondeungsaTe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