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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30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먼저된자 #나중된자 #천국 #마태복음 #램스타인한인교회 #ramstein #kaiserslautern #카이저슬라우테른 #홍성일목사 ---- 설교노트 -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 (마 19:27-30) 1. 지난 주 우리는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제한된 자원’에 대한 사회적 전제 속에서 시기와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하나님 나라와 바교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재화가 한정되어 있다면, 누군가가 하나를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하나를 잃게 될 것입니다. ‘제로섬(Zero-sum) 게임’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잘됨은 나에게 불안의 이유가 되고, 누군가의 성취는 나에게 위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한정된 재화’의 논리와는 다르게 작동합니다. 하나님의 곳간은 마르지 않기에, 누군가에게 베풀어진 은혜가 나에게 허락될 은혜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가 여전히 세상의 '제한된 자원' 논리로 신앙을 이해하곤 합니다. 누군가가 구원을 받거나 은혜를 입으면 마치 내가 받을 구원의 기회나 몫이 줄어들 것처럼 오해합니다. 14만 4천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경쟁을 부추기는 이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포도원 품꾼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주인은 12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고, 1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주인은 얼마든지 자신이 은혜로 불러들인 자들에게 그가 약속한 줄 것이 있습니다. 3. 우리는 흔히 천국을 이 땅에서의 수고에 따라 차등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곳으로 상상하곤 합니다. 헌신한 자는 큰 집을, 그렇지 못한 자는 초라한 거처를 얻는다는 식의 설명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천국에 투영한 세속적인 상상력일 뿐입니다. 차별적 지위와 소유가 기쁨의 근거가 되는 곳이라면, 그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세상의 연장선에 불과할 뿐입니다. 4.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간 뒤, 베드로는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무엇을 얻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보좌와 영생을 약속하지만, 곧이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는 경고를 덧붙이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우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라고 묻는 베드로의 물음이 어떤 점에서 주님은 염려스러웠던 것일까요? 5. 어린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9:14). 자녀가 부모에게 나올 수 있는 것은 그가 무슨 선한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자신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일’을 묻는 그에게 ‘선하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선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종교-도덕-선행 자본을 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내가 모으고 쌓은 것을 가지고, 그것을 조건 삼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6. 부자 청년과의 대화와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자신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뭔가를 버려서가 아니라, 예수께서 그를 부르셨기에 베드로는 예수를 따를 수 있었고, 그가 예수를 따라 나섰기 그는 다른 것들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고 말하면서, 그 일을 부자 청년과 비교되는 자신의 업적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니라, ‘먼저 온 자’가 됩니다. 먼저 온 자의 자리에서, 뒤에 부름 받은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수고와 일한 시간들을 셈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저들과 자신을 동등하게 대한다’며 주인에게 분노하는 ‘먼저 온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먼저 온 자라고 더 대접 받거나, 나중에 온 자라고 눈총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