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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기록4] 2025년 여성 안수 대화 마당 2025.12.12. 서대문 공간이제 한국교회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 여성 안수 운동을 앞서 걸어갔던 분들과 지금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증언을 기록하며 공유합니다. 도저히 앉아서는 나눌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26년에도 여성 안수 운동 그리고 그 너머 여성들의 투쟁에 함께해 주세요. --------------------------------------------------------- 최소영(총회 양성평등위원회 총무): 저희(기감)는 여성 안수가 1994년에 됐습니다. 사실은 1931년에 조선감리회에서 여성 선교사 14명이 안수를 받아서 실제 조선감리교회 이름으로 안수받은 건 94년 전입니다. 조선에 들어온 미국 감리교회 같은 경우는 남북 전쟁 여파로 미 감리회랑 남감리회로 갈라져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조선의 3.1 운동 이후에 조선 감리교인들이 독립 의지를 불태우면서 미국보다 저희가 먼저 감리회 통합을 하게 됩니다. 1930년에 감리교 통합 총회를 열었고 이듬해에 연회에서 여성 안수가 이루어졌습니다. 1931년 이때부터도 우리 감리교는 남녀 평등을 원칙으로 천명을 했습니다. '감리교 여성 목사 안수 70주년 강연'으로 하희정 박사님한테 얼마 전에 배운 겁니다. 초대 총리사였던 양주상 목사가 신문에 기고하면서 "우리 교회에서는 남녀 선교사가 있고 남녀 조선 교역자가 있으나 남자 목사만 연회 회원 될 자격이 있고 다른 일은 다른 일은 역사만 하고 회원이 될 자격은 없게 만들었으니 그것은 불공평하다."라면서, 연회 조직을 목사 반 평신도 반 전도사 반 교사반으로 명기를 하면서 거기에 "모두 다 남녀 막론하고 모두가 다 연회원이 될 수 있다"라고 천명을 하고요. 이 남녀 평등 정신이 저희의 법인 '교리와 장정'에도 명기가 돼 있어서 교직자 자격 란에 "(남녀 구별 없음)"이라고 들어가 있었대요. 어느 순간에는 없어졌다고 하는데 이게 없어졌을 때는 사실은 남녀 구별이 없는 게 너무 당연해서 없어진 거였습니다. 역사학자들 특히 하희정 박사가 정리해 놓은 것을 공부해 보니까 실제로는 거저 얻어진 건 아니더라고요. 여성 선교사들과 조선 여성 신도들의 노력들이 그 밑에 바탕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성 선교사들의 배경을 보면 19세기 초반만 해도 여성들이 선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굉장히 보조적이었다고 그래요. 헌금해서 남자 선교사한테 보내는 게 19세기 초반의 여성들의 역할이었다고 해요. 사회 전반적으로 보면 여성 운동의 꾸준한 결과물로 여성들이 교육을 받았고, 여성 전문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일을 안 주는 거예요. 보통 여성들이 제일 많이 공부하는 게 교육 분야랑 의료 분야였다고 그래요. 그런데 일할 곳이 없으니까 이게 세계 복음화의 열망하고 맞물려서 선교사로 뛰쳐나오기 시작한 거죠. 선교지에서는 아무래도 더 자유롭게 선교사들이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 조선에 와서 학교를 세운 게 첫 번째였고 병원을 세웠고 그 다음에 저널을 만들어서 문서 설교를 하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토착 사역자 특히 여성들을 양성하기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조선에서 20년 30년 사역을 했는데 연회 회원이 될 수 없어서 1930년 이전에도 꾸준히 우리를 연회원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제안을 계속했었다고 그래요. 1919년에서 선교사들이 추방된 1940년까지 '신학 세계'라는 잡지에 62회에 걸쳐서 47편의 남녀 평등에 관련된 글을 씁니다. 꾸준히 쓰고 이걸 통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설득을 한 거죠. 조선 여성들도 1900년부터 이미 전도 부인을 위한 신학원이 있었고 1920년 협성여자신학교, 1929년 첫 남녀 공학인 감리교신학교에서 조선 여성들이 교육을 받았습니다. 1922년에 아주 큰 사건이 있었는데, 전도 부인 300여 명이 모여서 임금 인상 투쟁을 합니다. 남감리회 전도 부인들이었는데 신임 감독에게 면담 요청하면서 '월급을 올려달라. 남자들은 70원에서 100원 받는데 왜 우리는 20원밖에 못 받냐. 우리도 한 가정을 책임져야 되는데' 이렇게 임금 인상 투쟁을 300여 명이 할 정도로 커다란 조직 활동들을 이미 했었던 것이고요. 그 다음에 1930년 1월 1일 최경자라는 분이 기독신보에 '여 전도인의 불평과 희망' 이런 글들을 실어요. 그러면서 '왜 임금 차별하냐. 왜 우리에게는 혜택도 안 주냐. 그 다음에 교회 제도가 너무 남성 중심적이다.'라는 내용이에요. '이 전도 부인들과 전도사들은 완전히 걸레 취급하면서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우리는 아무런 인정을 못 받는다'는 이런 것들을 이야기를 하고 개선을 요구합니다. 이런 선교사들과 조선 여성들의 노력의 결과로 사실은 남녀 평등이 저희 조선감리회에서 인정됐던 거예요. 1931년에 첫 여성 안수가 이루어졌는데, 모든 걸음이 힘들어집니다. 한국인 여성 안수는 1955년에 이루어져요. 31년과 55년은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왜 그럴까 궁금했었는데 찾았습니다. 한국인 여성 안수 첫 도전자는 1932년에 이미 중부연회에 목사 안수 과정 허입을 해요. 그리고 준회원으로 3년급까지 진급을 잘 합니다. 목사 안수를 앞두고 나서 갑자기 이분이 자원 퇴회를 하고 결혼을 해요. 아마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때부터도 이미 감리교회 여성 여성 목회자들이 결혼 문제랑 씨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쨌든 제도상으로는 1930년부터 남녀 평등이었고 1931년부터 여성 안수가 됐지만 선배들의 증언에 의하면 '막상 여성들이 안수 과정에 들어가면 남성들의 우려와 염려로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미루어 짐작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문제를 얘기 안 할 수 없는데요. 전도 부인들도 그렇고 사회복지에서 일하건 담임을 했던 대부분의 여성 목사들은 다 독신이었습니다. 그런데 1972년에 우리 헌법인 '교리와장정'에 이상한 법이 들어옵니다. "담임자로 결혼한 여자 목사는 교회 담임을 계속할 수 없으나 기관에서는 시무할 수 있다." 갑자기 결혼한 여성 목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얘기겠죠. 1966년에 안수 받은 조화순 목사님이나 2016년에 안수 받은 제 후배 목사가 50년의 차이가 있는데 목사 진급을 위한 자격 심사에서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결혼할 거야?" 그런데 조화순 목사님은 그걸 재치 있게 받아치셨는데, 2016년에 후배 목사는 남편 목사님을 교통사고로 잃고 아주 어렵게 진급 과정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 질문을 받고 나와서 1시간을 펑펑 울었대요. 이 법이 생기고 나서 1972년 당시에는 전체 교육자 중 여성 비율이 10.4%였는데 34년이 지나서 2006년에 전체 교육자 중 여성 비율이 5.37%까지 줄었더라고요. 그만큼 이게 여성 지도력의 심각한 손실이었다라는 걸 확인할 수 있고요. 1989년에 감리교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그 결과로 이 법이 없어졌고 이후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2005년에 또 이상한 법이 생깁니다. 이번에는 "부부 목사는 한 교회에서 담임자와 부담임자로 사역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에서 주로 얘기하는 것은, 부부 교역자가 은급 기금을 고갈시킬 거라는 것이었어요. 그때 당시 감리교회에 부부 목사로서 은퇴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2005년 당시에 감리교 교역자들이 9천 명이 넘었는데 그 중에 결혼한 부부 목사가 딱 50쌍(100명)이었고 그 중에 한 교회에서 사역하는 사람은 9쌍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은급 기금을 고갈시킬 거다라는 걸로 통과가 됐고요. 바깥에서 얘기를 해보면 '부부에게 너무 권력이 집중될 거다.'는 것도 있었지만, 제일 밑바닥에 있는 건 '여자는 사모를 해야지 왜 목사하려고 그래' 그겁니다. 결국은 그래서 한 교회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사모로 하면 되는데 여자가 왜 목사하려고 하느냐라는 것이 바탕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희는 2년마다 한 번씩 입법을 하거든요. 2025년 10월에 36회 총회 입법의회를 했는데 거기에서 부부 목사 사역 제한 폐지 현장 발의를 했어요. 장정개정위원회 냈는데 부결시켜서, 3분의 1 이상 서명을 받아서 현장 발의를 했는데, 저희도 11표 차이로 부결됐습니다. 처음에는 찬성 발언만 3명이 나와서 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장정개정위원장이 마이크를 딱 잡더니 "이 법은 부부 목사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안타깝게 부결이 됐고요. 그런데 부결 되는 순간에 저희가 온라인으로 밖에서 방청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전국에서 온라인으로 그걸 보고 있었던 젊은 부부 목사들이 꽤 있었던 거예요. 안에서 하는 한숨소리가 나와서 부결됐구나 느꼈는데 젊은 부부 목사들은 오히려 그 한숨소리에 자기들은 힘을 얻었다고, 위로를 받았다는 거예요. 이만큼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이 있구나. 그래서 그분들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 장로 안수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감리교에서는 장로는 3년간 교육 이수한 다음에 역시 똑같이 안수를 받게 됐는데 10년 전에 제가 여성 장로에 대해서 조사를 했었어요. 조사했는데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9년 뒤에 안수를 받습니다. 그런데 감리교 제도에서는 안수 받은 지 몇 년 지났냐 이 연급이 돼야만 교회 대표나 입법부 대표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여성 장로들은 이 연수가 차기 전에 은퇴해야 되는 거예요. 기회를 얻지 못하고,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남자들이 '우리가 해야 돼'라고 하니까 여성들은 항상 뒤로 밀려와서요. 저희가 2016년부터 매년 '양성평등 총대 워크숍'을 해서 총회 입법의회 전에 이분들을 계속 훈련을 시키거든요. 워크샵 하면서 나와서 일부러 발표하게 하고 훈련을 시키는데 이 분들이 글까지 써가지고 가져가셔도 총회 입법부에서 발언을 잘 못해요. 이유는 남자 목사님들 계신데 그 앞에서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요. 아직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지만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가 잘 주어지고 훈련이 잘 되는 것, 그 다음에 함께 기도하고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감리교 여성들은 여전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영상 제공: ㅂㅈ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