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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승하 후 무관 노상추는 지금의 홍성 지역인 홍주로 가게 된다. 순조가 즉위한 신유년은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해이다. 정조와 남인은 상대적으로 천주교를 옹호했는데, 노론은 남인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대대적으로 천주교를 박해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신유박해다. 홍주는 바다와 면한 지리적인 조건에 힘입어 천주교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천주교를 철저히 탄압했음에도 천주교는 근절되지 않았다. 노상추는 이런 현실을 한탄했다. 정조가 서얼허통을 실시했지만, 적서에 대한 구분을 철저하게 지키던 노상추는 문중 어른들이 족보에서 서얼 표시를 빼기로 하자 통탄하기도 한다. 1807년 서얼 집안인 박춘노가 모친상을 당해 묘비를 세웠는데, 이것이 노상추 집안의 분묘 범위를 침범해 소송을 제기한다. 이러한 내용들을 기록한 노상추의 일기는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노론 #천주교 #박해#신유박해#조선 #후기 #사회 변화상 볼 수 있는 무관 노상추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