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안동 마을구경] 풍산읍 만운리 | 방대미 | 못대미 | 평지 | 조파 | 만운저수지 | 망서루 | 모선루 | 효자각 | 호암,모암 바위각자 | 저수지 상류 늪지대 등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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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 ▶ 방담(方潭) 방담은 방담산을 배산(背山)으로 매곡천을 임수(臨水)로 한 아늑한 골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네모진 못이 있었으나 갑술년 대홍수에 매몰되어 현재는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가구수는 6가구로 안동권씨가 4호, 경주이씨와 동래정씨가 각 1호로 아주 단출한 마을이다. 예전에는 권강(權 )을 배향한 운계이사(雲溪里社)가 있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효자인 방담(方潭) 권강(權 )이 살았다고 해서 마을의 이름도 방담이라 했다. 또 옛날 마을 앞에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네모난 못이 있었다고 하여 방대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권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각과 비각 뒤편에 있는 바위에 이열암(怡悅 )이라 새긴 각자(刻字)를 볼 수 있다. ▶ 권강효자비각 방담 권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각이다. 선생은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부모의 병환을 보살피기 위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부모상을 당하자 여막을 얽어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효자비의 전면에는 "孝子贈持平行洗馬權 之閭"라 적고 있다. 비각의 형태는 단칸 맞배지붕이며 비각의 뒤편에 바위에 새긴 암각서가 있다. ▶ 이열암 효자비각의 뒤편에 있는 암각서이다. 화강암으로 된 바위면을 가로 54cm, 세로 18cm 크기로 다듬은 다음 가로 세로 17cm 크기의 글씨를 음각했다. 글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의미의 "怡悅 "이라 새겼다. ▶ 지담(池潭) 지담은 방담에서 500m 정도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만운저수지의 물막이 제방 바로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다. 매곡천을 사이에 두고 그리 넓지 않은 농경지가 마을의 앞골과 뒷골에 펼쳐져 있다. 이 마을은 경주이씨 문정파의 500년 세거지로 고려말기의 명신 문정공제정이선생(文靖公霽亭李先生)의 유지가 깃 든 곳으로 선생의 신도비와 종회가 자리잡고 있다. ◇ 지담:평지못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예전에 못(沼)이 있었다고 하여 지담 또는 못대미라 불렀다. ◇ 못대미:마을 앞에 있었던 작은 연못이 모가 나서 못대미라 하였다. ◇ 삼백산:못대미 동쪽에 있는 산이다. 삼백사(三百寺)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전하지 않는다. 영가지 의 기록에 의하면 삼백사는 풍산현의 북쪽 10리 떨어진 창풍천(昌豊川) 서쪽에 있다. 불가에서 전 하기를 신라가 쇠퇴할 무렵에 임금이 불교를 좋아하여 풍산현에는 절이 300개나 되었는데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여 다 없애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사찰들을 이 사찰에 통합한 후 이름을 삼백사 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고쳐지어 선비들의 책 읽는 곳이 되었는데 이름을 학록(學麓)이라 한다. ◇ 앞골:마을 앞에 펼쳐져 있다고 해서 앞골이라 한다. 앞골에서 매곡천 건너편에 제정이선생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 뒷골:앞골은 마을에서 바라다 보이나 뒷골은 보이지 않는다. 방담 마을과 산을 사이에 두고 경계 를 이루고 있으며 앞골의 뒤쪽에 있다고 하여 뒷골이라 부른다. ▶ 문정공제정이선생신도비(文靖公霽亭李先生神道碑) 고려말기의 명신 제정 이선생의 신도비이다. 신도비의 기록에 의하면 선생의 초명(初名)은 달중(達中)이며 후에 달충(達衷)으로 개명했다. 자는 중권(仲權)이고 호는 제정이다. 선계(先系)는 신라 아찬(阿餐) 휘(諱) 알평(謁平)의 후손으로 본관을 경주로 삼았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한림(翰林) 정언(正言)을 거쳐 여러 번 옮겨 성균관제주가 되었다. 선생은 문학이 우수하고 도량이 원대하였으며 의리를 살핌에 정밀하였다. 그의 학문은 문채가 밝고 빛났으며 도(道)로써 임금을 섬겼다. 시호는 배움에는 근(勤)하고 고종명(考終命)하였으니 일러 문정(文靖)이라 하였다. ▶ 제정(霽亭) 제정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했다. 평면의 구성은 전면 반 칸은 누마루를 설치하고 어칸에는 마루를 깔고 좌·우 협칸에는 방을 배치하였다. ▶ 평지(平村) 만운저수지의 위쪽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각성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농사는 대부분 논농사와 고추를 재배한다. ◇ 평지:마을에 평지못이 있어서 평지라고 불렀다. 1956년 풍산수리조합에서 저수지를 만들 때에 마을 전체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자못이라 하였다. ◇ 정자못:마을에 있는 정자 앞에 못이 있어서 정자못이라 하였다. ◇ 여막들:마을 서쪽에 있는 들이다. 송(宋) 효자가 여막을 짓고 삼년동안 시묘(侍墓)를 살았다고 하여 여막들이라 한다. ▶ 망서정(望西亭) 이 건물은 연안송씨들의 정자이다. 특이하게도 건물의 좌향을 서향으로 잡았는데 이는 후손들이 입향조인 송수은(宋水隱)의 묘소를 바라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이다. 지붕은 홑처마를 한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평면 구성은 전면에 반 칸의 누마루를 설치하고 어칸에는 마루를 깔고 좌·우 협칸에 방을 부설하여 사계절을 지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 호암(虎巖) 만운 1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각성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농사는 대부분 논농사와 고추를 재배한다. ◇ 호암(범바우):마논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마치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호암이라 부른다. 바위 면에 도소호계 맹락용산(陶笑虎溪 孟落龍山)이란 8자가 새겨져 있다. ▶ 사모암(四慕巖) 각자(刻字) 모선루 조금 못 미쳐서 오른편에 있는 바위 면에 새긴 암각서이다. 사모암은 세로로 쓰고 가로 글씨로 만촌(晩村)이라 새겼다. 같은 바위의 반대편에 모암(帽巖)이라 새긴 각자가 있다. 모암이라 새긴 것은 바위의 생김새가 사모와 닮아서 붙인 것이다. ▶ 도소호계(陶笑虎溪) 맹락용산(孟落龍山) 각자(刻字) 사모암에서 동쪽으로 5m 떨어진 바위 면에 새긴 글씨이다. 신축(辛丑) 중추(仲秋) 만촌이라 새긴 것으로 보아 사모암과 동일인이 쓴 것으로 보인다. 도소호계란 진나라 혜원법사(惠遠法師)가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 머무르며 한 번도 호계를 건넌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도연명과 육수정(陸修靜) 두 사람을 전송하여 저도 모르게 호계를 건너 범이 우는 소리를 듣고 안거금족(安居禁足)의 맹세를 깨뜨린 것을 깨닫고 세 사람이 서로 돌아보며 크게 웃었다는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맹락용산은 진나라 맹가(孟嘉)가 항온(桓溫)이 손성(孫盛)으로 하여금 그를 놀리는 시를 짓게 하였는데 그 시에 화답한 시가 매우 아름다웠다는 맹가락모(孟嘉落帽)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 호암(虎巖) 각자(刻字) 모선루 조금 못미쳐서 오른편에 있다. 바위의 생김새가 호랑이를 빼어 닮아서 호암이라 부른다. 이 바위로 인하여 호암 또는 범바우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바위 면에 가로 글씨로 호암이라 새겼다. ▶ 선성이씨묘하동천(宣城李氏墓下洞天) 각자(刻字) 호암과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만운 1리에서 2리로 연결되는 이 길은 거대한 두 바위 사이로 뚫려있어서 마치 동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선성이씨묘라 함은 근재(近齋) 이전(李 , 1486∼1529)의 묘소가 바로 모선루의 뒷산에 있어서 이렇게 붙인듯하다. 근재공은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많은 어진 선비들이 누명을 쓰고 화를 당하자 안동 풍산으로 낙향하였다. ▶ 조파(助坡) 매봉산 북서쪽에 있는 산간마을로 각성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농사는 대부분 담배와 고추를 재배한다. ◇ 조파:마논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호암과 대추월에서 조파로 갈려면 험한 산길을 굽이 돌아야 된다. 산이 험하여 고개마루에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 여러 명이 모여서 서로 의지 하여 고개를 오른다고 하여 도울 조 고개 파 자를 붙여 조파라 했다. ◇ 큰골:조파 뒷 골짜기가 깊어서 큰골이라 한다. ◇ 복숭아골:복숭아나무가 있어서 복숭아골이라 한다. ◇ 참나무골:참나무 숲이 우거져서 부른다. ◇ 참나무골못:참나무골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 새골:계단식 논을 새로 만들어 새골이라 한다. ▶ 추월·대추월(秋月·大秋月) 현공산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안동권씨와 충주석씨가 모여 산다. 안동권씨는 복야파의 후손들로 이 곳에서 14대째 이어온다. 예전에는 대추나무가 많았으나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만운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현재는 폐교가 되었다. 학교 정문에 조그만 빗돌을 세워 이곳이 만운초등학교였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빗돌의 내용은 1949년 11월 30일 개교하여 1993년 3월 1일 폐교되었으며 졸업생 1,627명을 배출하였다고 적고 있다. 현재는 안동불교대학 수련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 추월(秋月):지금부터 400여 년 전에 권추월(權秋月)이 살았다고 해서 추월이라 하며 또는 이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아서 대추월이라고도 한다. ◇ 거절골(巨寺谷)·거지골:추월 뒷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큰 절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 절에 거처하는 스님들이 많아서 쌀 씻은 물이 만운못까지 뿌옇게 흘렀다고 한다. 작은 못이 있는데 거지골못이라 부른다. ▶ 권극상재각(權克常齋閣) 만운보건진료소 옆에 위치한 정려각으로 훈련원첨정에 증직된 충신 권극상의 정려각이다. 맞배지붕을 얹은 비각이 세워져 있다. 비각 내부에는“忠臣贈宣略將軍訓練院僉正權克常之閭”라 적은 편액이 게첨되어 있다.(지명유래) #만운저수지 #만운동모선루 #풍산읍_만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