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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남편은 유별납니다. 애써 싸준 도시락을 가끔씩 산에 놓아둡니다. 산새들과 너구리가 와서 먹는답니다. 시인은 그런 남편을 핀잔하다가 생각합니다. "내가 차려준 밥상을 손톱만한 위장 속에 그득 담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 내가 해준 밥이, 날갯죽지 근육이 되고, 새끼들 적실 너구리 젖이 된다는 생각이, 밥물처럼 번지는 이 밤" "반지는 지금도 없잖아요." "그거 뭐해? 필요 없지" 익명의 기부인이 전재산 백13억원을 내놓고 세상을 떠난 뒤 공개된 인터뷰에서 아내는 반지가 없었습니다. 빚 보증을 섰다가 결혼반지까지 팔아야 했지요. 남편은 세 아들에게 유산상속 포기각서를 받으면서야 기부 결심을 알렸습니다. "걔네들(손주들)은 모르지. 어떤지" 또 한 분, 얼굴 없는 기부인이 대구 '키다리 아저씨'입니다. 아내조차 3년 뒤 신문에 실린 남편의 메모지 글씨를 보고서야 기부 사실을 알았다지요. 해마다 번 돈의 3분의1을 내놓은 지 10년 만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흔세살 중소기업인 박무근씨였습니다. 얼굴을 숨긴 이유를 그는 "더 귀한 나눔을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과시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은퇴를 앞두고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나눌 수 있다는 걸 알리면 많은 분이 동참할 것 같다"고 했지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대구 전기기계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세 평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독립했고 웬만큼 안정되자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20년 넘게 고향 군위의 어려운 아이들 돕는 것을 합쳐 모두 21억원에 이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 키다리 아저씨는 사라졌지만 기부는 이어집니다" 지난달 아흔아홉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장응복 장로는 의사로 근검하게 살았습니다. 자가용 한 대 없었고 생일잔치 한번 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고향 황해도에 학교와 교회를 짓고 싶었지만 생전에 이루기가 어렵자 한동대에 전재산을 기부했습니다. "배워서 남 주자"는 한동대 표어에 감명받아 "벌어서 남 주자"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겁니다. 한동대는 그를 설득해 "사후에는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낸 뒤 인터뷰 영상을 제작해 뒀습니다. "난 벌어서도 남 주자… 자기만 쓰면 결국 돈 암만 벌어봤자 갈 때는 한푼도 못 가져가잖아요" 두 키다리 아저씨가 부은 마중물은 나눔과 베풂의 큰 강물로 흘러, 세상을 따스하고 촉촉하게 적셔줄 겁니다. 4월 8일 앵커의 시선은 '벌어서 남 주자' 였습니다. [Ch.19] 사실을 보고 진실을 말합니다. 👍🏻 공식 홈페이지 http://news.tvchosun.com/ 👍🏻 공식 페이스북 / tvchosunnews 👍🏻 공식 트위터 / tvchosunnews 뉴스제보 : 이메일(tvchosun@chosun.com), 카카오톡(tv조선제보), 전화(1661-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