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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1937년 일제는 부여 부소산성 일원에 대규모 신궁 건립을 결정합니다. 일본 메이지 신궁보다 큰 100만㎡ 규모로 신궁 가운데 최고인 관폐대사 등급이었습니다. 1939년 착공한 신궁 건설에는 연인원 9만 명이 동원됐습니다. 불리해지던 전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구현할 땅으로 부여를 택했던 것입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일본하고 백제는 굉장히 교류가 많았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이미 내선일체의 연고가 있는 땅이었다, 부여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기 때문에."] 그러나 공사는 공정률 80% 상태에서 일본 패망과 함께 중단됐고, 철거 뒤 백제 충신을 기리는 삼충사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궁의 잔재가 있습니다. 바로 신궁 터 아래에 조성한 대규모 지하 굴입니다. 폭 1.89m에 높이 2.18m로 성인 2~3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고, 길이는 45m에 달합니다. 좌우대칭의 아치 형태에 당시로써는 최신 자재인 시멘트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유사시 대피 목적과 함께 귀빈들의 비밀 통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호수/백제역사도시연구원장 : "어떻게 보면 이게 비밀통로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아마도 일본에서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 혹시 제관으로 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부여군은 신궁의 잔재인 지하굴 처리방안을 놓고, 2019년부터 2차례 용역까지 했지만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하계현/부여군 백제왕도팀장 "문화재 관련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고 주민 의견 수렴도 더 해보고 나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굴욕의 잔재를 철거할지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지, 광복 80년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도 일제 청산은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KBS 뉴스 서영준입니다. 촬영기자:강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