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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주간 목요일 / 2026년 1월 15일 /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당신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원고 보기] https://cafe.daum.net/noeunsd1004/UuA... 1사무 4,1ㄴ-11; 마르 1,40-45 찬미 예수님 오늘 1독서는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인들의 전쟁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전에는 ‘불레셋’이라 불렀었는데요, 지난 30년간의 연구에서 필리스티아인에 대해 많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에게해(海) 부근에 살던 해양 민족으로, 기원전 1200년 경 자기들이 살던 곳에서 도망쳐 이집트에 정착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후 팔레스티나 남부의 해안 지방에 정착했습니다. (G. Glavin, 1Samuel in The Paulist Biblical Commentary, 253) 이들은 ‘가자’ 등에 기반을 둔 다섯 개의 도시 국가를 건설하는데, 이들이 연합한 나라가 필리스티아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짐작이 됩니다. 필리스티아와 유다인들은 한동안 평화롭게 지냈지만, 기원전 1050년경 해안 평야에만 머물러 살던 필리스티아인들이, 유다인들이 장악한 산악지대로 영토 확장을 꾀하면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김영선, 지혜여정:역사서 2, 10-11)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은 전투에서 패배하자, 실로에서 야훼의 계약 궤를 모셔옵니다. 계약의 궤는 탈출기(25,10-16)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든 것인데요, 그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만나를 담았던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계약궤는 하느님 현존의 상징이었습니다.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이스라엘인들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고,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라는 말로 독려한 후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싸워 승리하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습니다. 이 과정에서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스라엘인들이 계약궤 안에 있는 십계명의 정신대로 살려고 하기보다 계약궤 자체를 ‘부적’처럼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떤 행동이 하느님을 노엽게 해 드렸는지 반성하지 않고, 계약궤의 마술적 힘에 의지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그들도 계약궤를 보고 용기를 얻었지만, 이는 ‘오만의 용기’였습니다. 가장 거룩한 계약궤를 관리하던 호프니와 피느하스는 가장 비윤리적인 인물이었고,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병’은 한센병을 포함하여 다양한 중증 피부 질환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고대에 나병은 불치병이었으며, 나병으로 진단받는 것은 사형 선고를 의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병 환자들은 사회적으로도 격리되었는데, 레위기에 의하면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스스로 ‘부정한 사람이오.’하고 외치며 공동체에서 떨어져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레위 13, 45-46) 그런데 복음의 나병 환자는 율법을 어기며 예수님께 다가가 무릎을 꿇고 청합니다. “당신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인들이, 계약궤만 모셔 오면 자동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과 대조되는, 참된 신앙의 고백입니다. 치유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계약궤만 모셔 왔을 뿐, 하느님께 어떠한 청원도, 어떠한 기도도 드리지 않은 이스라엘인들과 대조적인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가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는 바람에,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셔야 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공동체로 복귀했지만,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처지를 당신께서 떠안으셨습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인들의 오만한 용기와 나병 환자의 겸손한 신뢰의 차이를 가르쳐줍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어떤 기도를 얼마 동안 바치면 이루어지고’, ‘누구에게 가서 기도를 받으면 효과가 좋다’고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계약궤를 신봉하는 태도입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의 처지를 대신 떠안으시는 예수님께 신뢰하며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나병 환자의 신앙입니다. “당신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신께서 그렇게 해주지 않으셔도 저는 변함없이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