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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체화의 명백함

다음은 천목중봉스님의 『산방야화』에 소개된 글 중의 하나인 ‘언어나 문자로도 견성할 수 있습니까?’ 글의 전문입니다. ◎◎◎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무명의 거친 풀을 헤치고 조사의 가풍을 우러르는 까닭은 오직 견성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부 대사도 ‘다만 말과 소리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 따로 견성하는 이치가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납자(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대답했다. “가령 단편적으로 견성(見性)을 말한다면 옛사람들이 깨달은 오묘한 이치를 두루 설명하여 처음부터 온통 다 외우고 지나간다 해도 무방하겠지만 설명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대체로 견성의 이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알 수도 없으며, 분별할 수도 없고 취하거나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떠들썩하게 작용을 일으키고 움직였다하면 그대로 참입니다. 그대가 한 털끝만큼이라도 알음알이를 가진다면 본체를 마주하더라도 계합할 수 없습니다. 요즘 눈 있고 귀 있는 자들 치고 견성을 말하지 않는 자가 누가 있습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견성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그것 아닌 것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고는 교학에서 말하는 ‘모든 법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말을 억지로 끌어들여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으면 그대는 좋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하려면 바로 해야 하고 근거를 대려면 분명히 대야 합니다. 단지 그런 것과 생각 생각 상응하려 든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근(命根)이 끊어지고 주체와 객체가 없어진 자리에서 바탕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다만 5음(五陰:색수상행식) 6식(六識:안이비설신의 육식)에 의지해 통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말로 할 때에는 견성한 듯하지만 정확하게 말해 보면 미혹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는 그대의 무명이 몰래 일어나고 사망이 멋대로 발생하는 대로 지껄이지 마십시오. 말할 때 엄연히 두 개의 본성이 있는 듯하니 생각생각 상응하기를 기대하나 그것이 될 일이겠습니까? 꼭 알아두어야 합니다. 견성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상응하는 도리를 말하는 것조차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상응하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꼭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잘못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는 두 가지 허물과 착오가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발심하여 도를 배울 때 언어나 문자로써 도를 통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애초부터 결단코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확실히 밝히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스승이 잘못되어 제자의 발심이 옳은지 그른지를 고려하지 않고,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주가 약간 있는 것만 보고서 교묘한 방편만 가르칠 뿐, 결코 공부를 하면서 정념(正念)을 지키도록 기다려 주지 못한 점입니다. 이는 그저 한결같이 ‘마음이 그대로 부처다[卽心是佛]’ ‘물질 그 자체에서 마음을 밝힌다[卽色明心]’는 등의 그럴듯한 화두로 스승과 제자가 서로서로 속고 속이는 것입니다. 스승은 자기가 체험한 경지로 이끌어 제자가 언어나 문자로 이해하기를 바라고만 있습니다. 요즘 선림(禪林)에서는 서로에게 익숙한 대로 하는 것이 풍조가 되고 있으니, 정말로 그들이 무엇을 도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천 년 전 부처님께서는 『원각경』나 『능엄경』에서 이들의 잘못된 견해를 꾸짖고 나무라셨습니다. 아마도 성인께서는 말세의 중생들에 게 이런 허망한 훈습이 있으리라는 것을 미리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처럼 문답을 자세하게 베풀어 그들 자신의 잘못을 알고 스스로 고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생사대사를 자기 중책으로 삼지 않고, 언어문자에 힘쓰는 것으로 스스로 깨달았다고 여기는 데야 어쩌겠습니까? 그러다가 홀연히 바른 안목을 가진 수행자가 나타나 그것이 잘못됐다고 손을 저어 나무라기라도 하면, 마음속에 갖가지 의심의 물결이 출렁거리게 됩니다. 나아가 문득 꾸짖고 배척하면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당신이 정말로 이 일과 단 한 번에 상응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언어나 문자를 싹 쓸어버려야 합니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그런 것들이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으면 이야말로 지독한 독이 심장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설사 부처님이라도 구제하기 어렵습니다. 대체로 참선하는 납자가 이렇게 잘못된 것은 스승에 의해 일시적으로 새둥지[草?? : 형식화된 언어 속으로 끌려들어간 점도 있고,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언어나 문자로써 알음알이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생사의 기슭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면 설사 석가와 미륵부처님께서 선도(禪道)와 불법(佛法)을 직접 당신의 허파와 간장에 부어 준다 하더라도 남에게서 얻을 수 없는 그 일구자(一句子)를 붙잡고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속이 매스꺼워 토해내고 말 것입니다. 당신인들 어찌 그 나쁜 독을 받아들이기를 원했겠습니까? 바른 견해가 없어 눈 뜨고도 잘못된 스승에게 꼬여 넘어갔던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선(禪)을 알음알이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무심코 던지는 한 토막의 비유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1,700공안을 일시에 뚫어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을뿐더러 차라리 일생동안 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만도 못합니다. 이런 내용을 당신이 이해한다면 향엄(香嚴)스님께서 지난날 위산스님의 문하생으로 있다가 말문이 막혀, 남양 땅에 있는 암자로 피해가 고생했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또한 아난이 능엄 회상에서 슬피 우느라 애쓰지 않아도 됐으리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대는 상대의 말을 이해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깨달은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깨달은 내용을 정확하게 인용해 주장하더라도 이는 벌써 걸맞지 않은 것입니다. 하물며 사량 분별로 그럴듯한 언어나 문자를 매개로 하여 허망하게도 눈앞에 나타난 소소영영(昭昭靈靈)한 허깨비를 주인공이라고 잘못 알고 보배처럼 아끼며 가슴에 새겨두는 것이겠 습니까. 이는 실로 미혹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미혹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을 오래도록 고치지 않으면 훗날에는 반야(般若)를 잘못 말했다는 과보를 받을 것이며, 가까이는 죽는 마당에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옛날 혜충국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남방의 불법이 크게 변해버렸다. 그들은 4대(四大)로 구성 된 몸속에 신령한 성품이 들어 있어 불생불멸한다고들 한다. 또 이 4대가 파괴되더라도 성품은 파괴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견해는 인도의 외도(外)들과 같은 것이다. 또 장사(長)스님 같은 분은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진실을 식별하지 못하고 그저 옛사람들이 말해 놓은 신령한 말만 좇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즘 수행자들이 6진(六塵)을 반영하여 일어나는 그림자를 자기의 참마음이라고 잘못 인식하는 풍조를 지적한 것입니다. 즉 『능엄경』에서 ‘백천의 큰 바다는 알지 못하고 한 방울의 물거품을 전체 바닷물로 안다’고 한 것과 상통합니다. 또 진여(眞如)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리들이 ‘시방세계(世界)가 그대로 바로 나(娥)이다. 이 성품은 허공을 둘러싸고 온 법계에 두루하며, 고금과 범성(聖)을 가릴 것 없이 두루하고 삼라만상에 가득하다’고들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옛사람이 ‘한 줄기 풀을 들면 그것이 장육금신이다’라고 하고, 또 ‘한 털끝마다 부처님 나라가 나타난다’고 한 등등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음식에 대해서 말하더라도 역시 배는 고픈 것이며, 의복에 대해 말하더라도 추위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이치를 어찌하겠습니까? 모름지기 깨달음이란 직접 스스로 겪어봐야 합니다. 또한 설사 그대가 직접 깨달았다 하더라도 본색종장(本色宗匠)을 만나서 그대가 깨달았다는 그 자취마저 싹 쓸어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른바 알음알이가 도리어 가시가 되어 심장을 찌르고, 좋은 약을 고집하다가 도리어 병을 얻고 마는 꼴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언어나 문자로 통할 수 있고 의식으로 도달하여 알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한량없이 오랜 세월 이전부터 흘러온 생사의 굴레를 금일에 완전하게 끊어버리고, 또 그대가 끊어버렸다는 사실조차도 단박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작은 근기, 천박한 재주로써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정말로 그대의 미혹을 더욱 부채질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생사의 굴레에서 헤매는 것이 너무도 애통해 간절한 마음으로 이러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참선을 그저 말로만 하려는 자들이 얼굴을 돌려 나에게 침을 뱉는다 한들 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천목중봉 #성철스님 #견성 #깨달음 #자기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