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사순 제3주일 복음 특강]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 물을 청하시는 이유 I 전삼용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 주임) 2026.3.8 천주교/신부님강의/가톨릭스튜디오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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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요셉신부 #가톨릭스튜디오 사순 제3주일 대강론 –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 물을 청하시는 이유 교우 여러분, 사순 제3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물가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밀당' 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한낱 피조물인 여인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라고 청하십니다. 온 우주의 물을 만드신 분이 물 한 바가지의 봉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기서부터 하느님의 기막힌 구원 전략이 시작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우리에게 왜 '봉헌'과 '순종'이 축복의 필수 조건인지 일깨워주는 명백한 역사적 실험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968년부터 1982년까지 미국 정부는 뉴저지와 덴버 등지에서 '부의 부정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대규모 사회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런 조건이나 노동의 의무(봉헌) 없이 일정 금액의 현금을 무상으로 지급한 것입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수혜자들의 이혼율은 40% 이상 급증했고 노동 의욕은 감퇴했으며 공동체는 급격히 와해되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수혜자들의 심리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정부가 우리를 돕는다"며 감사해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지원금을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이 종료되거나 지원금이 조정될 때, 그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내 돈을 뺏느냐"며 정부를 향해 분노를 쏟아냈고 불평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갔습니다. 이와 비슷한 비극은 미국 인디언 원주민 거주구역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과거의 잘못을 보상한다는 명목으로 인디언들에게 막대한 무상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이나 봉헌 없이 주어진 이 돈은 독이 되었습니다. 자립 의지는 꺾였고, 거주구역 내 알코올 중독률과 자살률은 전국 평균의 몇 배를 상회하게 되었습니다. 무상 지원이 그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정체성을 앗아가는 '문화적 학살'이 된 셈입니다. 이것은 '봉헌 없는 베풂'이 인간을 축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존엄성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물 한 바가지, 십일조, 선악과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가 진짜 은총을 주시는 분인가'를 잊지 않게 하려는, 즉 우리가 은혜를 모르는 괴물이 되지 않고 축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상속자'로 남게 하려는 하느님의 지혜로운 사랑의 전략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목이 마르셨을까요? 물론 육신으로는 그러셨겠지만, 영적으로는 그 여인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냥 공짜로 주지 않으십니다. 왜일까요? 공짜로 받으면 소중함을 모르고, 누가 갑인지 모르며, 순종할 줄도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청하십니다'. 여인이 가진 아주 작은 '물 한 바가지'를 요구하심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열고 그 빈자리에 영원한 생명을 채우려 하시는 것입니다. 인류의 비극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셨지만, 딱 하나 '선악과'는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본분인 '순종'을 봉헌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다 생명나무를 잃었습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이 든 물동이는 어쩌면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욕망인 '선악과'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만 생명나무의 실과인 당신 자신(성체)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물을 좀 다오 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요한 4,10) 믿음의 핵심은 '누가 주시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은총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면 봉헌은 '세금'이 되지만, 주인이 누구인지 알면 봉헌은 '사랑'이 됩니다. 이 봉헌은 사실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에게 바친 '십일조'로 표현됩니다. 십일조는 모든 축복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축복을 담기 위한 필수적인 그릇입니다. 과부의 헌금이 그러했듯, 그것이 나의 전부일 때 하느님 또한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세계적인 비누 회사 '콜게이트'의 창업자 윌리엄 콜게이트(William Colgate)의 실화입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안의 소년이었습니다. 16살에 고향을 떠날 때, 한 경건한 이웃이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윌리엄, 네가 버는 첫 1달러에서 10센트를 떼어 반드시 하느님께 바치거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네 사업의 동반자가 되어주실 것이다." 그는 뉴욕의 한 비누 공장에 취직해 첫 주급을 받자마자, 당장의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소중한 돈인 10센트를 떼어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불콩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은총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기 위해 기쁘게 봉헌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순종을 보시고 엄청난 마중물로 응답하셨습니다. 사업이 번창할수록 그는 십일조를 2/10, 5/10로 늘려갔고, 말년에는 수입의 전부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렸을 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이 세상 전체를 맡겨주셨습니다." 윌리엄 콜게이트는 마중물을 청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했고, 자신의 작은 봉헌을 통해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상속받은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을 청하십니다. 여러분의 '선악과'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이것만은 내 거야"라고 꽉 움켜쥐고 있는 그 물동이는 무엇입니까? 이번 사순 시기, 주님께 그 물 한 바가지를 기쁘게 드립시다. 내가 주님께 십일조와 순종의 물을 부어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집착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의 샘물을 터뜨려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