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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현성공안

다음은 2022년 9월 서울 보현사에서 있었던 법회 영상입니다. 정확히 3년 만에 재업로드 하는 영상입니다. 그렇기에 그간 제 법문을 들어오셨던 분들께서는 3년 전의 제 말이 지금과 같은지 한번 살펴도 보시고, 또 자신의 안목이 얼마만큼 달라졌는지를 확인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이 공부를 하다보면 인연에 맞게끔 어느 정도 안목이 열리고, 여러 공안들의 틈새가 보이고, 좀 알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수행에 숨통이 좀 트이는 듯하고, 환히 열리는 자유의 느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경계 또한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가지게 됩니다. 자기의 관성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공부에 있어서 눈앞의 밀도가 높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눈앞이 정말 밀도 높게 안목이 열린다면 나라는 집착과 중심성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안목이 열리면서 눈앞이 밀도 깊게 확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벗어나려면 한번은 크게 벗어나야 하는 것이고, 깨어나려면 한번은 크게 깨어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작게 깨어나는 것이 깨달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삶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기에는 아직 힘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목주 스님과 거량을 한 수좌도 이러한 경우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벽암록》 10칙, 목주할후(睦州喝後)입니다. 목주 화상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최근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갑자기 고함[喝]을 쳤다. 목주 화상이 말했다. “노승이 그대의 고함[一喝]에 한번 당하게 되었군!” 그 스님이 또 고함[喝] 쳤다. 목주 화상이 말했다. “그렇게 서너 차례 고함[喝]친 다음에는 어찌 하려는가?” 스님이 아무 말이 없자, 목주 화상은 곧장 그 스님을 치면서 말했다. “이 사기꾼 같은 놈!” 수행자가 눈앞으로 돌아가게끔 하기 위해 선지식들은 수많은 방편법을 쓰셨습니다. 덕산(德山)스님은 방을 들었고, 임제(臨濟)스님은 할을 했습니다. 이 공안에서 목주(睦州) 스님은 기꺼이 할을 들어주었으며, 여유롭게 움츠러드는 시늉도 해주셨고, 마지막엔 방과 할을 동시에 쓰기도 하셨습니다. 기량이 정말로 뛰어나신 분은 이처럼 살활을 자유롭게 쓰시기도 하고, 또한 살활의 대상으로 들어감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 현성공안(現成公案: 혹 見成公案이라 칭하기도 합니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벽암록》에서 몇 차례, 《원오어록》에서는 자주 언급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성공안에서 현(現, 見)은 ‘지금 나타남이나 드러남’을 뜻하고, 성(成)은 ‘이루어진다’, 혹 해석에 따라 ‘완성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진리란 ‘이미 완성되어 드러났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수행으로써 얻어지는 고귀한 깨달음이 아니라, 그 어떤 노력과 유위 이전에 이미 지금 눈앞으로서 환하게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화두 참구, 염불, 알아차림과 같은 그 모든 수행은 이 눈앞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연스런 인연으로 펼쳐지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입니다. 이처럼 수행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지 결코 최종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수행을 잘 하기 위해, 뛰어난 수행자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안도 마찬가지입니다. 1600 공안을 타파하는 것이 이 공부의 목적이 아닙니다. 눈앞이 밝아진다면 1600 공안들의 함정과 같은 질문들은 은은한 미소에 힘을 잃고 스러집니다. 눈앞이 확연히 밝아짐으로써 조사들의 관문이 더 이상 질문으로서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나라는 실체감을 가질 때에야 질문과 해답이 있습니다. 질문을 하는 나와 해답을 확정지으려는 내가 그 실체감의 중심을 이룹니다. 하지만 나로부터 벗어나 눈앞으로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전체적 안목을 얻을 수 있다면, 세상 그 모든 존재와 경계, 인연의 일들이 여실한 흐름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 때에 나는 실체나 중심이 아니라, 그 모든 진리가 들어오고 나가는 말끔한 통로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이럴 수만 있다면 천년 전 조사들께서 제시하신 고칙 공안을 깨고 삶으로 뛰쳐나올 수 있게 됩니다. 눈앞으로 드러난 우리의 이 삶이 바로 살아있는 현성 공안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질문으로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이미 답으로 드러난 것이기도 합니다. 질문으로 주어졌을 적에 삶의 낱낱 일들은 공안(公案)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깊게 고민하고 통찰하며 해결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하기 전부터 삶은 이미 확연한 답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성(現成)입니다. 삶은 본래 이러합니다. 삶은 처음부터 질문이자 답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에 어두운 우리에겐 삶은 여전히 질문과 답으로 갈리게 됩니다. 아직 눈앞의 삶으로 분명하게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몸과 생각에 갇혀 있으면 삶은 온갖 질문들로 가득찰 뿐입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중심과 실체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눈앞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바뀐 바 하나도 없이 전체의 여실함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바뀔 필요 하나도 없는 이 여실함이 진정한 의미의 답입니다. 그렇기에 답은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앞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연스레 펼쳐지는 그 모든 일들입니다. 질문한다면 고민이겠지만, 답이기에 누리는 것입니다. 답은 펼쳐진 것이고, 확인하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고, 써먹는 것입니다. 답은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잘못된 질문이 멈춰질 뿐입니다. #진리 #깨달음 #선불교 #현성공안 #눈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