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팡세, 파스칼 /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 Pensées, Blaise Pascal, roseau pensant / 북튜버 책소개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파스칼 #팡세 #생각하는갈대 #Pascal #Pensées 00:00 도입부 00:13 인류 역사상 가장 기이한 천재 01:20 18세에 계산기 발명 01:42 두 가지 큰 장애 02:17 신의 은총을 경험 02:55 장세니스트 변호 시작 03:30 「프로뱅시알」 04:22 얀센의 유작 「아우구스티누스」 때만에 갈등 촉발 05:34 파스칼의 명문장들은 「프로뱅시알」에 담겨 있다 06:15 거대한 저작을 집필할 결심 06:54 파스칼 사망 후 발견된 유고들의 묶음 08:20 「인간 존재의 비참함」 강조 09:24 파스칼의 「인간학」 10:11 시대 풍토가 바뀐 영향은 몽테뉴에서 비롯 11:37 인간은 비참을 안다는 점에서 위대 13:55 초월자의 목소리에 주목 14:15 파스칼의 「내기」 이론 15:18 「신이 있다」와 「신이 없다」의 갈림길 18:08 나약한 인간 유형의 몸부림 20:02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 파스칼의 '팡세'를 소개합니다. 파스칼은 인류 역사상 아주 기이한 천재였습니다. 수학과 과학의 천재였으면서도 산문의 대가였고, 비범한 심리학자이면서도 신에 목말라 했던 고통받는 영혼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수학보다 신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훨씬 더 위대할 수도 있었던 자신의 삶을 망쳐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가 기독교를 옹호할 목적으로 쓴 방대한 노트들은 오늘날 인간의 존재 조건을 갈파한 철학책으로만 유용할 뿐 기독교도들의 바이블로는 읽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열두 살 때 혼자 힘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32번 명제를 풀어냈습니다. 혼자 원과 선을 그리며 놀다가 찾아낸 것이었고, 수학을 배운 적도 없을 때였습니다. 열일곱 살에는 아르키메데스 이래의 대업적이라고 격찬받은 『원추곡선론』을 발표했고, 열여덟 살에는 계산기를 발명하여 오늘날 컴퓨터로 이어지는 원천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또 노름꾼들의 주사위 던지기를 보면서 거기서 자극을 받아 확률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순수 기하학에서부터 실용 과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탐구심을 보였던 파스칼에게는 두 개의 큰 장애가 있었습니다. 건강 문제와 회심(回心)이 그것입니다. 건강 문제가 외적 장애였다면 그의 회심은 내적 장애에 가까웠습니다. 신의 부름에 더 충실한 삶을 위해 억누를 길 없었던 학문과 연구를 포기하고 종교에 맹렬하게 매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의 삶에 대한 혐오와 신의 침묵에 고뇌하던 파스칼은 1654년 11월의 어느 밤에 뜨거운 감격과 환희 속에서 신의 은총을 느낍니다. 이날 밤 그가 양피지에 적어 넣은 기록은 이랬습니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복종……]. 파스칼은 이듬해 수도원인 포르루아얄을 찾아가 2주 동안 기도와 명상에 잠기지만 [고독한 은사(隱士)]로 숨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포르루아얄에 머물 때 그곳에서 숨어 지내던 아르노를 만나면서 그는 장세니스트들의 변호를 위해 논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파스칼은 교회에 소속된 성직자나 신학자도 아니면서 당대의 첨예한 신학 논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계기는 1656년에 『한 공작에게 부친 아르노의 두 번째 편지』가 불신앙, 이단, 교황과 사제들에 대한 모욕 등으로 이단 선고를 받은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파스칼은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아르노와 장세니스트들을 옹호하기 위한 일련의 글을 발표합니다. 이 편지들이 『팡세』에 담겨 있는 『프로뱅시알』(한 지방인에게 부치는 편지)입니다. 당시 장세니즘(얀센주의)은 로마 교황청에 밀착한 예수회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얀센주의는 카톨릭 내에서도 일종의 청교도적인 입장에서 신의 은총과 예정설과 금욕주의를 강조한 데 비해 예수회는 지나치게 이완된 교리를 주장한 때문이었습니다. 예수회와의 격렬한 신학 논쟁 싸움의 선두에 섰던 파스칼은 보다 큰 싸움을 준비합니다.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을 깨닫게 하고 신의 은총과 함께 하는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거대한 저작을 집필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지요.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파스칼이 장세니스트들의 총본산이 된 포르루아얄에 은거하지 않은 진정한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건강이 악화될수록 파스칼은 경건하고 금욕적인 삶에 집중하면서 [기독교 호교론]을 위한 준비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파스칼이 구상했던 대작은 미완에 그치고 말지요. 그는 불과 39세에 일찍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필생의 대작으로 구상했던 작품은 결국 파스칼이 죽은 후 발견된 유고들을 모은 단장(短章)들의 묶음집 형태로 출간되었습니다. 1669년의 포르루아얄 판(版) 이래 『팡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 작품은 수많은 단장(短章)들을 파편처럼 모아 편찬한 탓에 뚜렷한 체계가 없는 데다가 미완성인 채로 쓰다 만 짧은 메모 형태의 문장들이 너무 많다는 결정적인 하자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고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체계는 크게 2부로 나뉩니다. 제1부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이고, 제2부는 [신 있는 인간의 복됨]입니다. 그 중간에 이질적인 양자를 접합하기 위한 연결 부분은 [인간학에서 신학으로의 이행]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들은 『팡세』의 제1부를 가장 깊이 공감하며 읽게 됩니다. [인간학]이야말로 누구에게나 공통된 관심사이기 때문이지요. 여기엔 인간 존재의 온갖 본질적인 문제들이 총망라됩니다. 인간의 삶에 근원적으로 내재된 헛됨, 비참, 권태, 허영 등등이 여지없이 해부되고 비판받습니다. 파스칼은 특유의 금욕주의적 경향과 아주 우울하면서도 심각한 태도로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줄기차게 강조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의 거대함, 영원의 무한한 흐름, 신의 전지전능함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실로 너무나 하찮은 존재이며 끔찍할 정도로 비참합니다.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의 인물이라도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위락을 찾기 바쁘지요. 한시라도 자신의 궁극적인 존재 조건을 잊지 않으면 그 자신을 어떻게 스스로 견딜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인간이 고안해 낸 온갖 재미난 오락거리들, 가령 사냥, 공놀이, 춤, 도박 등등도 결국은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잠시나마 잊고 다른 데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마련된 장치일 뿐이라고 파스칼은 말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언제 사형장으로 끌려갈지 모른 채 감옥에 갇힌 죄수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파스칼이 펼치는 [인간학]은 놀라울 만큼 예리합니다. 그가 비판하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은 당대 특유의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주체적이고 근대적인 교양인들' 때문에 더더욱 강조된 듯합니다. 기나긴 중세의 영적 억압으로부터 이제 막 풀려난 유럽인들이 바야흐로 도래한 '인간의 시대'를 만끽하면서 자유분방한 인간적 삶을 즐기려는 풍조가 얼마나 만연했겠습니까. 파스칼의 [인간학]이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감각 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그 무렵의 까닭없이 명랑한(?) 시대 풍조에 대한 파스칼의 저항심이 한몫 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비참을 삶의 모든 층위에서 예리하게 추적한 파스칼은 '인간의 비참'으로부터 놀라운 반전을 이끌어냅니다. 인간이 비참하다는 걸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비참하지만 결코 자신들의 비참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을 자연적인 상태로 알고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인간은 짐승들과 달리 '참을 수 없는 비참'을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인간의 위대는 바로 이 비참의 의식 때문이지요. 이처럼 인간은 비참과 위대가 한꺼번에 뒤섞인 존재이면서, 경멸과 존경의 대상이고, 모순과 역설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을 그 누가 구제할 것인가? 파스칼은 온 인류의 지혜가 갈구하며 찾으려 했던 '최고선'들을 찾아서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뒤쫓아 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서 파스칼은 철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자의 목소리에 주목합니다. 인간은 애초에 창조되었을 때 원래 위대한 상태에 있었고 신의 위엄과 영광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타락한 끝에 낙원에서 추방되면서 추락하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이른바 원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파스칼의 [인간학]이 [신학]으로 넘어갈 때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내기' 이론을 다룬 대목입니다. 사람들이 경험과 이성적 사고로써 확인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기꺼이 동행하지만 마지막 한 걸음을 더 내디뎌 '신앙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수단이 필요합니다. 인간적 사고에서 초월적인 사고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신의 존재 증명]이 필수적인데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성으로 판가름할 수 없는 선택이 문제가 될 때 선택 자체를 보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파스칼은 이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배에 올라타 있다.]고. 우리는 이미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올라타 있기 때문에 [신이 있다]와 [신이 없다]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성이 우리의 판단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이해득실의 기준에 따라 선택하자고 제안합니다. 무신론과 유신론 중에 어느 편이 우리에게 더 [수지맞는] 장사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이지요. 파스칼은 마침내 자신이 수학의 세계에서 도입한 확률론까지 동원하여 결론을 내립니다. [신이 있다]는 주장을 선택하는 게 압도적으로 이롭다고 말이지요.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