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사무엘이 기도 없이 제물만 드렸다면 헛된 그림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으며 드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매튜 헨리/사무엘상 7장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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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럇여아림에 간 하나님의 궤(사무엘 상 7:1,2) 여기서 우리는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궤에 대한 기사를 보고는 약 40년 후 다윗이 그 궤를 옮겨 갈 때까지 (대상 13:6) 다만 한 번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14:18). Ⅰ.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축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을 그들의 짐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궤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 가 아니라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 가 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게 되었다.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기쁨으로 궤를 그들에게로 옮겨갔다(1절). "그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겼다" 는 말씀이 맨 처음에 나왔다. 그들의 이웃인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받아들일 때 만큼 그것을 떠나보낼 때는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궤로 말미암은 벧세메스에서의 살륙은 자의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땅한 응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살륙을 당한 자들은 하나님의 궤를 원망할 것이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렘 25:6)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례를 더럽히는 자에 대한 그의 심판은 그 성례를 두렵게 생각지 않게 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더럽히게 하며, 잘못 사용하게 하는 데서 부터 시작된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때 참으로 귀한 손님을 환영하며 맞이 하듯이 존경과 외경, 그리고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환대하는 가운데 모시고 갔다. (1) 그들은 궤를 모실 만한 합당한 장소를 준비하였다. 그들에게는 궤를 안치할 공적인 건물이 없었다. 그러나 아비나답의 집에 모셨는데 그 집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아마 그 성읍에서 제일 좋은 집이었을 것이다. 또 아마 그 집주인은 그 성읍에서 가장 경건하며, 하나님의 궤를 매우 사모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들판에 있는 돌 위에 하나님의 궤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으며, 제사장의 성음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기 집에 그것을 모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평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집안으로 모셨는데, 아마 그 집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모셨을 것이다. [1] 하나님은 그 궤를 안치할 곳을 찾아 내신다. 한 사람이 그것을 몰아내면 다른 사람의 그것을 모셔 들이고자 마음이 동한다. [2] 하나님의 궤가 개인의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은 결코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아직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공적인 장소를 구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집에서 집으로 돌아다니며 설교하였다. [3] 때로는 이스라엘의 평민들이 신앙적인 면에서 제사장들보다 더 잘 할 때가 있으며 그들을 부끄럽게 할 때가 있었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준비하였다. "그들은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 그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그가 나이가 많아 허락했기 때문이거나 또는 자기의 집을 돌보아야 하는 일 때문에 그 일을 시키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아마 신앙이 깊고 경건한 젊은이이며 동시에 그러한 최상의 일을 할 만큼 열심이 있었을 것이다. 엘리아살의 일은 심술궂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궤를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것일 뿐 아니라, 호기심에 가득찬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지거나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는 궤가 놓인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늘 고상하게 꾸미는 일을 하여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궤가 비록 궁벽한 곳에 안치되어 있기는 해도, 아무도 돌봐주는 이가 없는, 무시된 상태로 내버려진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엘리아살을 레위 족속, 더우기 아론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지 않다. 또 그가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번제를 드리거나 향을 피울 제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몇몇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 앞에 와서 기도하였을 것이며 그는 그때마다 그들을 도와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들은 그를 성별하였으며, 그의 동의를 얻어, 그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시켰으며, 늘 이 일에 종사하도록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 성읍에 있는 모든 이름들 가운데서 그를 따로이 세웠다. 이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하고 있는 난점에 비추어 볼 때 능히 용서받을 수 있는 처사이다. 하나님의 궤가 금방 포로에서 해방된 것과 같은 상황에서는 급작스럽게 정식으로 엄숙한 가운데 모시기는 기대하기 어렵고, 있는 형편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Ⅱ. 하나님의 궤를 여기에 그대로 둔다는 일은 서글픈 일이다. 다시금 실로에 잘 모셔야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해도 그 곳은 아직 황량한 채로 있었다(렘 7:14). 아니면 놉이나 혹은 기브온, 그것도 아니면 회당과 제단이 있는 다른 곳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러나 궤는 애국심이 불타는 사람이 일어나서 바른 장소로 모셔갈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있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1. 하나님의 궤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기간은 매우 오랜 기간이었다. 하나님의 궤는 40년 이상이라는 매우 긴 기간 동안 멀리 떨어지고, 궁벽한 곳에 자리잡고, 찾아오는 이들도 없으며, 거의 무시된 오히려 삼림의 성읍에 머물러 있었다(2절). 다윗이 옮겨가기 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에 있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 사이에 거룩한 열심이 쇠잔하였다는 증거인데, 이상하게도 사무엘이 다스리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궤가 지성소로 옮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묵인하셨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궤가 제자리에 있을 때 그것을 무시하였던 죄를 벌하시고자 하시기 때문이었으며, 또 하나님의 궤를 설정한 그 제도의 중심은 다만 그것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나중에 올 좋은 것이 곧 진동치 못할 것" 임을 보여 주고자 하시기 때문이었다(히 9:23; 12:27).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그들에게서 나오지 않은 한 사람을 성별하여 그 궤를 지키게 하였다는 것을 책망하기 위한 것이었다. 2. 20년이 지나서 비로소 이스라엘 온 족속은 하나님의 궤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70인역 성서는 오늘 우리가 읽는 성서보다 그 뜻을 보다 더 분명히 밝혀준다.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족속이 다시금 여호와께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의 궤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어디 있는지, 또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궤가 성전에 없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의 표시가 없는 가운데 그들은 날마다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제격식대로 드릴 수가 없었다. 형식적인 교수들이 대체적인 외형상의 꾸밈새에 만족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제나 열납의 표시가 없는, 하나님의 궤가 없는 제단에 대해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을 찾아 헤매며, 탄식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무 하나님의 성령께서 특별히 역사하신 사무렐의 설교를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회개와 갱신의 경향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며,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슥 12:10) 시작하였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우리가 가진 성서 가운데서 이것을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건과 비견할 말한 것을 찾는다면 사도행전 2,3장의 일대 회심 사건뿐이라고 본다. (1)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의식의 귀한 가치를 아는 자는 그러한 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2) 참다운 회개와 회심은 하나님을 찾아 탄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며, 우리가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우리는 파멸이며, 하나 님의 은혜를 회복하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은혜 가운데 다시 임하시게 하시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는 안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하나님의 궤를 소유하고, 그것을 들여다보거나, 그것을 찾아 탄식할 때가 더 좋은 때였다. 은혜의 방법이 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천시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애써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다. 7:2 없음. 7:3 우상을 제하고 미스바로(사무엘 상 7:3-6) 사무엘의 이름이 4장 1절에 나오고 지금까지 한 번도 언급이 되지 않았는데, 그 동안 사무엘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을까? 하지만 그가 백성들 사이에서 행한 수고가 비록 언급은 되지 않았어도 이제 그 열매가 맺고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모하기 시작하였다." 는 것을 깨닫자, 쇠는 달았을 때 쳐야 하듯이,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충실한 친구로서 그들을 위해 두 가지 일을 힘써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Ⅰ. 개혁은 "우상을 제거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하기 때문에 사무엘은 그들로 하여금 우상을 #god #jesus #church #preaching #김지용목사 #자비교회 #하나님 #예수님 #성령 #설교 #말씀 #성경 #bible #scripture #sermon #christianity #christian #기독교 #개신교 #protestant #예수그리스도 #christ #jesuschrist #worship #praise #prayer #pray #기도 #blessings #축복 #오디오북 #audiobook #potcast want to donate? KEB HANA 585-910091-32207 ㄱㅈㅇhttps://paypal.com/paypalme/770710 3333172584745 Kakaobank ㄱㅈㅇ https://go.missionfund.org/mercyrefomed